미국에서 친(親) 기업주의가 만개하고 있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사법부까지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경쟁력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요직 인사,판결 등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확보한 의회 다수당이라는 정치적 기반을 토대로 기업 규제 완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기업 회계관리 및 자본시장 감독을 맡고 있는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으로 친기업적 성향의 크리스토퍼 콕스 하원의원(공화당.캘리포니아주)이 새로 지명된 것은 대표적인 기업 친화정책의 산물이다. 윌리엄 도널드슨 현 위원장은 미 재계로부터 기업과 시장을 지나치게 규제한다는 강한 비판을 받아 왔다. 콕스 지명자는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투자자들의 증권 사기 소송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다. 주식매입선택권(스톡옵션)을 엄격하게 비용 처리토록 하는 규정에 반대했었으며 합병과 관련한 회계 강화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콕스 지명자가 의회 인준을 받을 경우 SEC의 기본 정책방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이는 기업 여론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미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투명성 확보와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 진행된 증권 관련 규제강화가 도를 넘어섰다는 불만을 제기해왔다. 부시 대통령은 또 오하이오주 하원의원 출신인 롭 포트먼을 국내 기업 보호를 위한 무역 규제와 자유무역협정 등을 총괄하는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임명했고 플로리다 의원인 피터 그로스를 중앙정보국장 자리에 앉혔다. 의회도 공화당 의원들의 주도적인 활약으로 친기업적인 법률 개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집단소송제도를 까다롭게 만든 게 대표적이다. 이제까지 변호사들은 소송하기 쉬운 주(州)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지만,앞으로는 소송금액이 500만달러 이상이거나 주요 피고인(기업)과 같은 주 출신의 원고(투자자)가 전체 이해관계자의 3분의 1이 안될 경우엔 연방법원에서 맡도록 했다. 그만큼 집단 소송이 어려워진 셈이다. 신용카드회사들이 원하던 대로 개인파산법도 까다로워졌다. 무담보 후순위채권자인 신용카드 회사들에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파산법 7조를 개정,소득이 주별 평균을 넘고 무담보채무를 25% 이상 갚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조항을 이용한 파산신청을 못하게 만들었다. 대법원도 최근 미국 5대 회계법인의 하나인 아더 앤더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아더 앤더슨이 엔론의 회계 관련 서류를 파기한 혐의로 받았던 유죄 판결을 뒤집어 하급심으로 내려보냈다. 하급심의 판결에 흠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결정은 기업인이 연루된 화이트 칼라 범죄 수사를 상당히 제약할 것으로 보인다. 알베르토 곤자레스 법무장관은 "수사 및 조사권을 무책임하고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며 조사 관련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대법원 판결에 동조했다. 미국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연초 집권 2기의 국정 청사진을 밝히는 자리에서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법을 개혁하고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약속했던 공약을 하나둘씩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워싱턴대학 로스쿨의 조지프 셀리그먼 학장은 "부시 행정부의 최근 조치들은 상공회의소나 대기업 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원탁회의)이 편안하게 느끼는 내용들"이라고 평가했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