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 국회의원 > 오늘날 국제 관계의 중요한 특징은 각 방면에서의 유기적인 상호의존(interdependence) 관계이다. 단순히 자주(independence)냐 의존(dependence)이냐의 이분법을 사용하기에는 국가 간의 상호작용이 너무 긴밀하고 복잡해졌다. 특히 우리나라는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데다 남북 대치상황과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까지 감안할 때 항상 국제 정세와 그 변화의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역으로 외국 또한 우리나라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보유 중인 외화를 다양하게 운용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하자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화가 폭락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와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이 온갖 통로를 이용해 우리의 정책과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 애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독도 문제나 외국 금융기관의 영향력 문제 등을 예로 생각해 보자.독도를 중간 수역에 포함시킨 1998년 한·일 어업협정에서 우리 정부는 독도 영유권이 훼손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협상 당시에도 우리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협정 체결 당시 전문가들은 국회 공청회와 언론 매체를 통해 '잘됐다''잘못됐다'라며 다양한 의견을 피력했다. 모두 객관적인 입장에서 견해를 밝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가운데 만약 평소 일본측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인사들이 포함됐고,이들이 객관성을 가장해 일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주장을 폈다면 부정 선수가 뛴 불공정 경기였던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금융시장 개방 이후 활발해진 외국 투자기관들의 경우를 보자.최근 정부가 외국계 펀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 금융시장과 외국 투자에 관련된 국내의 제도적 장치들이 미비했음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 투자기관은 대부분 국내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고문(顧問) 등 여러 형태로 고용하거나 연계돼 있다. 이러한 인사들이 그런 관계를 숨긴 채 언론매체 기고 등을 통해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도 하고 국제화 등의 명분론 아래 실제로는 외국 투자기관의 입장을 대변할 수도 있다.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논리와 중립적인 의견 개진 및 이해관계인의 주장을 구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외국 정부나 기관으로부터 체계적인 지원을 받는 사람에게 그 관계와 활동 내역을 공개토록 하는 법률의 제정은 최소한의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일본 정부나 단체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학자가 독도나 어업협정 문제에 대해 언론매체 또는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표명한다면 먼저 이해당사자와의 관계나 이해의 내용을 공개토록 할 필요가 있다. 외국 금융기관과 관계를 맺은 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강대국인 미국도 이미 1930년대부터 자국에 영향을 미치려는 외국의 활동을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했다. 1938년 외국대리인 등록법(Foreign Agent Registration Act)을 만든 데 이어 1946년 연방로비활동규제법(Federal Regulation of Lobbying)을,1995년에는 로비활동공개법(Lobbying Disclosure Act)을 제정했다. 미국에 비해 외부의 영향에 훨씬 취약한 우리가 외국의 불투명한 영향력 행사를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 간 상호의존은 국제 질서의 기반이 되고 있지만 바람직한 상호의존 관계를 형성하려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뿐 아니라 피아를 식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국제화 시대에는 국경은 없고 국적만 있다'는 말이 있지만 요즘에는 국적조차 불분명한 사람들도 있다. 겉모습만 보고 막연히 우리 편일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상호의존 시대에 개방은 불가피하다. 우리의 이익만 챙기는 폐쇄적 태도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다만 균형 있고 건강한 상호의존 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생존의 필요조건이다. 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외국대리인 로비활동 공개법'이 최근 우리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만시지탄은 있으나 중요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