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통업계가 11억 인구의 거대시장인 인도 진출을 재촉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의 최대 소매업체인 막스앤스펜서와 메트로가 이미 인도시장의 문을 두드린데 이어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도 인도를 차기 확장사업의 0순위 후보지라고 선언한 뒤 이번 주에는 존 멘저 해외영업 담당 사장이 사전 정지작업 차원에서 인도를 다녀갔다. 또 영국 2위의 유통업체인 데벤햄스는 현지 합작사를 확정한 단계이며 최근에는 한국의 이마트도 인도 진출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도는 지난해 처음 소매시장 개방 의사를 밝힌 이후 집권연정을 지지하는 좌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독립 이후 58년째 폐쇄돼 있는 인도 소매시장의 개방이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인도는 전체 소매업체의 98%를 한국의 구멍가게와 같은 영세상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좌파진영은 유통업의 개방이 이들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집권당인 국민회의당은 좌파진영의 우려를 해소할 만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면서 조만간 본격적인 행동계획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며 관련 업계도 이를 거의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인도가 소매시장을 개방하려는 1차적 목적은 다국적 유통업체들이 자국에서 조달하는 제품의 규모나 범위가 크게 확대돼 경기부양을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근대적인 물류 시스템 개선과 냉장체계를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의 국가적 목표인 연평균 8%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유치가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 카말 나스 통상장관은 최근 BBC와 인터뷰에서 "토종 소매점들이 문을 닫아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매시장에 FDI를 받아들일 것"이라며 소매시장 개방 의지를 재확인한 바 있다. 그는 다만 좌파진영을 의식,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기존 소매업체가 위험하거나 대체되지 않을 모델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는 현재 소매 분야에서 외국인의 지분을 26%나 49% 중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월마트의 존 멘저 사장은 지난 12일 뉴델리에서 "인도가 소매시장 개방 결정을 내리는대로 현지에 매장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향후 인도의 소매시장을 낙관한다"고 전제하고 "이번 방문의 목적은 현지 공급업체와 관계 공무원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매장 오픈 여부와 상관없이 올해 인도에서 조달하는 물품의 분량과 종류를 늘리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들은 멘저 사장이 향후 투자계획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그가 이번에 뉴델리와 방갈로르를 방문하고 카말 나스 통상장관 등과 두루 만난 것이 향후 인도시장 진출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차원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앞서 월마트의 리 스콧 최고경영자는 지난달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소매업체 회의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터키를 비롯한 다른 어느 시장보다 인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인도시장에 대한 강력한 진출 의지를 표명했다. 월마트는 현재 일본이나 영국, 독일 등 선진국 뿐만 아니라 중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대부분의 신흥 성장국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으나 유독 인도에는 단 하나의 점포도 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는 인구 면에서 머지않아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다 중국 다음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하는 초대형 시장인 만큼 결코 이대로 놔둘 수가 없다는게 월마트의 입장이다. 월마트는 현재 방갈로르에 사무소를 갖고 있지만 중국에서 연간 180억달러 어치의 물품을 조달하고 있는데 비해 인도는 11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월마트에 앞서 영국의 막스앤스펜서와 독일의 메트로는 이미 카르나타카에서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도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또 영국의 데벤햄스는 최근 인도의 플래닛 스포츠와 공동으로 내년에 뉴델리에 5만 평방피트 규모의 1차 매장을 내기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 데벤햄스의 매콜리 이사는 "우리는 중국보다 인도 사업에 더욱 적극적"이라며 "이는 인도가 영어 인력이 풍부하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높은데다 안정적인 은행 시스템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우리나라의 이마트도 현지 동향을 면밀하게 파악중인 것으로 전해지는 등 세계적 유통업체의 인도 진출이 점차 가시권에 접어들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인도 소매시장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지만 무턱대고 왔다가는 낭패를 보기 쉬운 만큼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코트라 뉴델리 무역관의 김승호 차장은 13일 "인도에서는 제품의 크기와 가격, 규모, 상거래 방식, 소비자 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나 중국과는 다른 전략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면서 "막스앤스펜스의 경우 초기에 고급 소비계층을 겨냥해 고가품 위주의 전략을 구사했다가 고객의 수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작년부터 가격을 평균 15∼30% 인하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뉴델리=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wolf8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