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70)가 일본 보수우익 세력이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오에는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원장 현기영)의 공동주최로 24-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의 기조강연에서 집필 중인 소설 '안녕, 나의 책이여!'의 주제 등과 결부해 일본 보수우경화를 경고할 예정이다. 주최측이 미리 공개한 강연문 '우리는 나즈막히 나즈막히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에서 오에는 "일본이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아시아에서 완전히 고립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1945년부터 3년 간을 내 생애에서 가장 희망이 부풀었던 시대로 본다. 전후 새로운 헌법이 가져다 준 해방감은 실로 신선하고 생동감 넘쳤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 일본인이 아시아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패전 후 십 년 간에 걸쳐서였다"면서 "(평화주의 헌법 이후) 장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아시아 나라들과의 사이에 화해가 성립되고, 우리는 새로운 일본인으로서 아시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1994년 소설 '만연 원년의 풋볼(万延元年のフットポ-ル)'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모호한 일본과 나'라는 수상연설에서 "일본이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전쟁 중의 잔학행위를 책임져야 하며 위험스럽고 기괴한 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평화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11년 전 노벨문학상 수상식장에서 밝힌 '모호한 일본'의 모습은 자신이 우려했던 반대방향으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며 우려했다. 그는 "모호한 일본에 대한 지적에 대해 가장 먼저 응답한 사람은 전후 일본정치사에서 보수우익의 총수로서 장기집권을 담당한 나카소네 전 수상이었다"면서 "그는 헌법 전문(前文)과 9조에 명시된 전쟁포기와 비무장의 사상을 제거함으로써 일본을 모호하지 않은 나라로 만들고자 하며, 현재 행해지는 일본 자위대의 헌법 위반적인 확대를 긍정하고 버젓하게 공격적인 조직으로 재편성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우경화 추세와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고집이 서로 보완관계에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며 "헌법이 나카소네 씨와 정부 여당이 바라는 대로 개정된다면 일본국은 그들이 말하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가 되어 아시아에서 완전히 고립될 것이며, 의지할 것은 미일군사동맹의 강화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에는 보수우익의 헌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 지난해 중반부터 평론가 가토 슈이치(加藤周一), 철학자 쓰루미 슌스케(鶴見俊輔),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 등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9조의 모임'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전쟁포기를 선언하고 평화주의 국가로 갱생하고자 만든 일본의 헌법 제9조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이다. 그는 "헌법의 평화조항을 지키려는 시민이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국민투표에 의해 헌법의 개정이 부결되더라도 일본 자위대의 전력 확대, 일미군사동맹 등 정부 여당의 정치노선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오에는 1970년대 김지하 시인에 대한 군사정권의 탄압에 항의해 단식투쟁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일본 천황이 수여한 상을 거부하는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일본의 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새겨져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