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로데오거리에 로드숍을 설치, 운영해온 G사는 다음달 가게의 문을 닫고 백화점 장사만 하기로 했다. 계속되는 내수침체로 매출이 30%나 줄어들었는 데도 건물 주인이 점포세를 20% 올려달라고 요구,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명동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에 자리잡은 스타벅스 명동점도 건물주인의 무리한 임대료 인상 요구를 견디지 못해 장소를 옮기기로 하고 1일 문을 닫았다. 건물주인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매출액의 20%(월 6천만원선)인 임대료를 앞으로는 40%(1억 2천만원선)까지 올려달라고 요구해 왔다는 것. 스타벅스는 지난해에도 임대료를 세 배나 올려달라는 건물주 요구에 강남 코엑스몰의 아셈점을 철수시켰다. 이처럼 폭등하는 상가 등 부동산 임대료가 소비의 젖줄인 유통의 발목을 잡고 있다. 편의점 체인 GS25의 재계약팀 관계자는 "최근 폐업하는 편의점의 대부분은 재계약 과정에서 상가주가 과도한 가격을 요구해 수익구조를 맞출 수 없어 무너진 경우"라고 전했다. 과도한 임대료는 창업에도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화장품 소매 체인 미샤의 가맹점팀 관계자는 "새로 지점을 내면서 업주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임대료 문제"라고 밝혔다. 프랜차이즈업 관계자들도 "점포 임대료 때문에 창업 희망자의 70~80%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서울강남 청담동의 고급 명품점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3년 전 평당 1천2백만원이던 전셋값이 지금은 2천만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청담동의 한 웨딩숍 관계자는 "현재 월 1천8백만원을 임대료로 내고 있는데 건물주가 월 3천만원을 제시한 다른 수입 브랜드에 자리를 넘겨주려고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소규모 영세 상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송모씨(45·서울시 도봉구)는 97년 외환위기 이전 월 40만원이던 임대료가 지금은 60만원으로 올라 걱정이 태산이다. 송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파마 요금은 2만~2만5천원으로 비슷한데 건물세는 계속 오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자동차에서부터 자장면 과자 등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상품 가격은 외환위기 이후 거의 제자리 걸음인 반면 임대료는 빠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 임대료는 세계 최고수준으로 주한외국인 상공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수입차 시장의 한-일 비교를 해보면 한국의 점포 임대료 수준이 터무니 없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년 한 해 서울에서 팔린 BMW는 총 2천1백22대. 같은 기간 일본 도쿄의 최대 딜러인 BMW도쿄 판매량인 5천7백여대의 37% 수준이다. 도쿄에 BMW 딜러 2개가 더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서울에서 팔린 BMW 대수는 도쿄의 3분의 1에도 훨씬 못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벤츠 판매량을 비교해 보면 차이는 더욱 확연하다. 일본에서 작년 한 해에 팔린 벤츠는 3만9천대 가량. 그러나 한국에서는 10분의 1도 되지 않는 3천1백88대가 팔렸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도쿄의 30%도 못파는데 점포임대료는 이와 맞먹는다"면서 "비싼 임대료는 결국 차 판매가에 전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그만큼 손해"라고 지적했다. 세계적 시장조사기관인 쿠시맨 & 웨이크필드의 조사에서도 서울 명동과 도쿄 긴자의 평당 월 임대료는 각각 1백6만원과 1백9만원으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상은·김현예·유승호·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