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출판계에 2세 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 일시적 미풍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뚜렷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1960년대, 70년대 출판사를 차려 30∼40년간 이끌어 오던 원로 출판인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잇따라 경영일선에서 한발짝 물러나면서 나타난 자연스런 현상으로 풀이된다. 이미 소리 소문없이 창업자가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준 경우도 부지기수다. ◆2세 경영 더이상 낯선 풍경 아니다 2003년말 현재 우리나라 출판사는 2만1천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출판사는 500군데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생각보다 많은 출판사가 수년 전부터 2세 경영시스템을 도입했거나 자식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진행중이다. 국내 손꼽히는 단행본 출판그룹 민음사. 을유년 새해가 시작되자 마자 전격적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박맹호 대표가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 대신 자회사인 ㈜황금가지 박근섭 대표이사가 민음사 대표이사(발행인)를 겸임하게 됐다. 출판 현장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들에게 실질적 권한을 넘겨준 셈. 그러나 민음사는 오히려 뒤늦은 사례에 속한다. 역사가 꽤 된 곳은 2세, 심지어 3세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출판사도 제법 눈에띈다. 올해 회갑을 맞은 을유문화사는 정진숙 회장이 발행인으로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손자인 정상준 상무이사가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다. 샘터사는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 고문의 뒤를 이어 큰아들인 김성구 대표가 이끌고 있다. 아동 서적 전문 출판사 예림당은 나춘호 대표가 있기는 하지만 역시 아들인 나성훈 전무가 회사경영에 참여하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YBM시사영어사도 민선식 사장이 민영빈 회장으로부터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받으며 경영 전면에 나선지 오래다. 교학사, 박영사, 범우사, 학문사, 현암사, 학원사, 신구문화사, 범문사, 서광사,신아사, 일신사, 화학사, 동화출판공사, 수학사, 향문사, 한림, 청림, 교문사, 경문사 등 의외로 많은 출판사들이 2세 경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엇갈리는 반응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교차한다. 좋게 보는 쪽에서는 출판역사에 새겨진 나이테가 그 만큼 늘었다는 반증이며,창업자의 철학과 색깔을 계승하고 지식문화를 축적, 발전시키는 세대교체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것. 게다가 일본 등 외국에서도 대를 이어 출판일을 하는 경우를볼 때 국내 출판계는 뒤늦은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가족 중심의 경영이 주류를 이루는 출판 업종의 특성상 출판 대물림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계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선대가 쌓은 전통의 토대에서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2세 출판인이 의욕적으로양서를 내놓으면 괜찮겠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실제로 2세가 경영을 떠맡으면서 도산한 경우도 허다하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2세에게 출판 전권을맡기는 것은 기업생존과 관리측면에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며 "출판계도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