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 고려대 교수.통계학 > 한 나라의 발전과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통계제도의 역할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 정책의 기획,집행 뿐만 아니라 평가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통계만이 객관적인 판단의 근거가 된다.통계제도는 통계의 생산과 가공,그리고 보급에 이르는 과정과 나아가 적절한 사용까지를 고려해야 한다. 품질이 좋은 통계란 의사결정에 이용될 때 불확실성이 적은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기획,투자,연구를 거쳐 시간이 걸리고 오랜 기간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에 의해 적절한 과정을 통해서만 생산이 가능하다. 정책입안자는 항상 정책실패의 구실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유혹에 빠진다. 특히 정답을 알 수 없는 통계는 핑계로서는 안성맞춤이다. 통계지식이 부족한 의사결정자들은 통계 생산자를 꾸짖으려는 경향이 있다. 경제관계부서의 고급 공직자들도 가끔 통계에 대해 타박을 하고 있다. 이들은 통계투자에 인색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어떤 때에는 발표주기나 비교시점을 걸고 넘어지고,어떤 때는 피부 물가나 피부 경기지수가 왜 없느냐고 야단이다. 모든 제품에는 사용설명서가 있다.부적절한 사용으로 제품의 기능을 잃기도 하고 회복할 수 없는 대형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수 목적에 맞는 주문생산도 해야한다.통계도 마찬가지다. 현재 생산되지 않는 통계의 종류도 많다. 현 체제로는 예산이나 인적자원이 제약돼있고 행정과 예산편성의 경직성으로 그리 쉽게 바뀔 수도 없다. 캐나다에서는 통계청장이 각료회의에 발언권 없이 옵서버로 참석한다.거기서 토의되는 정책입안에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여기에 통계를 미리 기획하고 생산하게 된다.통계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생산책임자의 전문성으로 통계생산이 주도되고 계획되며 서너 다리 건너가 전달되는 아마추어들의 불합리한 간섭과 훈수를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통계생산자들은 또 다른 면에서도 수난을 겪고 있다. 1996년 미국 상원의 보스킨(Boskin) 위원회는 소비자물가지수가 1.1% 포인트 과다 추정된 것으로 판단하고 이것이 미국의 국가재정적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며,연간 1천5백억달러의 적자를 유발하는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이렇듯 재정적자를 통계에 책임 전가하는 추세는 우리에게도 닥쳐올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통계개선방안을 단골 메뉴로 등장시켜왔다.그 내용은 항상 비슷한 것이었는데 참여정부도 통계인프라 강화방안을 준비하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 내용에는 통계전문 인력의 부족,부족한 통계생산 투자,통계기관의 위상과 의사결정의 능동성 부족,정부 각 부서의 협조체제결여,통계의 부실한 원자료와 행정자료의 통계적 활용 불가능,통계시스템을 총괄하는 국가위원회의 부재 등이 포함돼 있다.즉 통계지원시스템의 후진성으로 요약된다. 최근 논의되는 빈곤탈출지원정책 논의에서 보면 빈곤의 실태를 알수 없어 정책입안이 어렵게 보인다. 참여정부가 출범한지 2년이 된 오늘 도대체 누구에게 자료부실타령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사회복지를 그토록 강조해온 정부가 정책에 필요한 통계자료를 지금까지 왜 준비하지 않고 있었는지. 정책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통계가 돼야 한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은 이제 더이상 논란이 될 수 없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이번 기회에는 반드시 경제규모에 맞는 통계 투자확대와 시스템 보강으로 백년대계의 통계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참 논의되고 있는 동북아 허브라는 구상도 통계적으로 미리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1954년에 시작한 유럽연합의 통계국(EUROSTAT)이 오늘날 어떻게 유럽통일에 주춧돌이 됐는지를 잘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 동북아 지역통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아주 좋은 기회임을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