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KDI국제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미국의 한 조용한 시골 마을에 변호사 한 사람이 이사오면서 동네가 시끄러워졌다는 것이다. "왜 권리 위에 잠자십니까?"라고 하면서 주민들의 '법 의식'을 고취시켰기 때문에 다툼이 빈번해졌다. 그러다가 변호사가 또 한 사람 이사오면서 동네는 소송판으로 변했다고 한다. 미국의 법대에서 흔히 듣는 '변호사 시리즈' 중 하나다. 1997년 한 통계에 의하면 그 해 미국에서는 모두 1천5백만건의 민사소송이 50개 주 법원에 제기됐는데 이는 2초에 한 건씩 소송이 제기된 셈이다. 미국의 사법제도 유지 직접비용은 2001년의 경우 GDP의 2.04%인 2천54억달러에 이르렀다. 우리돈으로 약 2백20조원을 상회한다.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이런 저런 피해를 당하게 마련인데 손해액수가 작으면 그냥 참고 넘어간다. 배상을 받는데 드는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액수가 작더라도 피해자가 다수이면 사회적으로 어떤 제도를 통해 그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게 해 줘야 잠재적인 가해자가 조심하게 되므로 집단소송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사회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피해자 개개인은 원래 배상받아야 할 소액을 배상받는 데 그치게 된다. 따라서 누구에게도 일을 벌일 인센티브가 없다. 그래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 소송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변호사 등의 역할이 중요하며 그들의 선행투자가 다른 피해자들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훌륭한 제도가 집단소송이지만 현실은 이상한 결과도 만들어 낸다. 가장 많이 드는 사례가 비디오대여 체인점 블록버스터 사건이다. 한 고객이 비디오 반납기일을 지키지 않을 경우 추가 요금이 부과되는 것이 부당하다면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텍사스주의 제퍼슨 카운티 법원이 승인한 화해안에 따르면 대여 기일을 준수하지 않아 추가 요금을 낸 고객들은 1인당 20달러 상당의 무료 비디오 대여 쿠폰(신작 비디오는 제외)과 1달러짜리 물품 할인구매 쿠폰을 수령할 수 있게 됐다. 블록버스터에는 총 4억6천만달러의 부담이 발생했으나 실제로 쿠폰을 받아간 고객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담당 변호사는 9백25만달러의 보수를 수령했다. '피해자'의 극히 일부가 소액의 비금전적 배상을 받고 변호사는 거액의 현금 보수를 받은 것이다. 이런 특이한 사례를 인용하면서 집단소송제도를 폄하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비판도 물론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도 이제는 답답했는지 지난 10일 상원이 집단소송개혁법(Class Action Fairness Act)을 72 대 26으로 통과시켰다. 집단소송의 화해 내용이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되도록 하고 현금이 아닌 보상으로 화해가 이뤄지는 경우 변호사 보수를 법원이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법이다. 하원도 곧 이 법안을 승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법이 미국 소비자들의 권리 구제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법제도의 남용이 발생하면 부당한 비용이 발생하고 그 비용은 소비자 전체에게 전가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는 않는 일부 세력에는 혜택이 돌아간다. 즉 이 법은 왜곡된 자원의 배분을 바로잡아 미국 소비자들을 더 강력하게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2001년에 소송 비용으로 인한 물품가격의 상승 부담 등을 미국인들은 1인당 7백21달러 꼴로 부담했다. 한국에서도 증권집단소송제도가 올해 1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집단소송제도를 환경,소비자분쟁 등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미국의 경험은 우리가 새로운 제도를 고안하고 운영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을 가르쳐 준다. 정치적 당위성의 판단에는 사회적 비용의 예측이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