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이후에 발행된 1백환짜리 지폐에는 한복차림의 젊은 엄마가 색동옷을 입은 꼬마 아들과 함께 저금통장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진이 실려 있다. 한 조폐공사 직원의 아이디어가 채택된 것인데 국민의 저축심을 고취시켜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한다. 이 화폐의 도안이 과연 효과적이었는지는 측정할 길이 없으나,이후 은행권에는 세종대왕 이순신 이황 이율곡 등의 인물이 등장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은행권에 나타난 인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으로 1960년 그의 하야와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 현직 국가지도자가 화폐에 등장한 전형적인 후진국 사례였다. 화폐는 한 나라의 얼굴격이자 아울러 문화수준과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나라마다 그 등장인물에 여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업적이 뛰어나 존경의 대상이 될 뿐더러 역사적인 검증에서 논란의 소지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화의 경우는 워싱턴 링컨 해밀턴 잭슨 루스벨트 등 전직 대통령 일색이다. 중국의 런민비(인민폐) 역시 마오쩌둥(毛澤東) 류사오치(劉少奇)가 부각돼 있다. 문화예술을 중시하는 프랑스의 프랑화에는 세잔 생텍쥐페리 드뷔시 등 화가 작가 작곡가가 다양하게 나와 있다. 지난해 도안을 바꾼 일본의 5천엔,1천엔짜리 지폐에는 메이지시대의 소설가와 다이쇼시대의 세균학자가 새로이 선보였다. 최근 위조지폐가 문제되면서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화폐도안을 바꾸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고 있다. 그런데 등장인물을 누구로 할 것인가가 쟁점으로 떠올라 벌써부터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시대의 과학자와 여성을 채택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하다. 세계 각국의 화폐들을 보면 인물초상이 대부분이긴 하나 자기 나라를 상징하는 학 사슴 표범 올빼미 벚꽃 해바라기 등 동식물을 주소재로 사용하는 나라도 많다. 화폐도안이 현안으로 떠오른 이상 시기가 문제이지 어떤 형태로든 변경될 게 분명하다. 위조를 방지하면서 또한 오랜 역사의 문화수준을 뽐낼 수 있는 훌륭한 지폐도안을 기대해 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