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수 < 고려대 법대 교수 > 최근 속칭 '연예인 X파일'이 인터넷을 타고 번지면서 그 여파가 심상치 않다. 이 사건은 광고대행사가 리서치 회사에 연예인들의 개인정보를 조사해 문서화 한데서 비롯됐다. 광고대행사로선 품격있는 광고모델을 적시·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신상정보가 필요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문제는 그 신상정보에 검증되지 않은 소문들과 허위사실이 적시돼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관련 회사들은 본질적인 윤리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인기와 대중의 호기심에 밀접하게 연관된 연예인정보는 문서화되기 무섭게 유출되기 쉽다는 점을 인식했어야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타인의 인격과 명예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유포시킨 네티즌의 의식과 행태다. 고의든 과실이든 잘못은 인간이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인간성의 한계요 약점이다.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사이버 공간에는 각종 악성리플,인신공격,신용훼손 같은 인격권 침해행위가 급증하고 있다. 더구나 P2P,메신저,커뮤니티 등 정보통신매체를 통해 명예훼손 정보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대상도 정치인,종교인,기업인,인기연예인 등 공인을 넘어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돼 가고 있다. 묵과할 수 없는 사이버 명예훼손행위는 단순히 네티켓을 벗어난 비신사적 행동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오프라인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반사회성을 띠는 범죄행위가 될수 있다. 형법은 진실 또는 허위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명예훼손으로 처벌한다. 정보통신망법은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진실 또는 허위사실을 가지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형법보다 더 무거운 형으로 다스리고 있다. 이같은 조치는 극단적인 경우에 한한다고 치자. 하지만 피해자의 인권보호가 중요한 형사정책의 축으로 등장한 오늘날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에서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은 명예훼손 관련 정보를 불법통신으로 간주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해당 정보내용의 삭제와 같은 시정요구를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 불법·불건전 정보의 심의를 통한 시정요구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에 우리 스스로 반성해볼 점이 있다. 각자 타인의 인격을 위해 약간의 배려와 존중하는 마음만 가진다면 우리의 사이버공간은 훨씬 깨끗해질 것이다. 타인의 인격에 대한 배려는 바로 자신의 인격에 대한 존중과 직결된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이야말로 인터넷 자유와 인터넷 기술에 앞서 인터넷 윤리의 비중을 높여야 할 때다. 만약 지금 우리가 인터넷 질서 바로세우기에 정성을 쏟지 않으면 가상공간은 오염의 범람으로 정화하기 힘든 지경으로까지 변질될 염려가 있다. 오직 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으로 이룩한 산업화의 언덕에서 나쁜 물,나쁜 공기 때문에 쾌적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그것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는지 되돌아보자.사이버 생활공간도 마찬가지다. 바른 정보화의 물길을 잡아 주지 않는다면 가상세계에는 정의의 강물이 흐를 수 없다. 수년전 오양 비디오 사건처럼 연예인 X파일 유포 같은 비윤리적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려면 인터넷 생활공간에서 예의있는 네티즌들이 주류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윤리교육과 캠페인 등을 통한 의식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적어도 청소년시절부터 인터넷윤리에 대한 학습 기회가 제도적으로 확대됐으면 한다. 깨끗한 인터넷 세상을 위해 직·간접으로 봉사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언론중재위,검·경 사이버범죄수사대 등의 기관활동만으로는 오히려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깨끗한 인터넷 세상을 꿈꾸는 각종 민간단체들의 자율적인 정화운동에도 힘을 실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에 이용자 스스로의 자정노력까지 보태질 때 연예인 X파일 같은 정보폭력은사라질 것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