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 금융사의 임원으로 퇴직한 나는 이런저런 창업 궁리를 하다가 2002년 5월 서울 강북 변두리 지역에 1백평이 넘는 대형 '꽃게,아귀 전문' 체인점을 냈다. 당시 비슷한 점포를 내서 재미를 보고 있던 친구의 얘기를 들은 터에 체인본부의 '논리정연'한 홍보 팸플릿을 접하는 순간 '탁'하고 무릎을 쳤다. 식당경영에 문외한이었지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체인본부의 말은 당시로서는 무척 힘이 됐다. 체인본부로부터 소개를 받고 보증금 2억원,월세 4백90만원(관리비 포함)에 점포를 얻었다. '대형화=경쟁력'이라는 '착각'에 보증금을 웃도는 돈을 추가로 들여 깔끔한 인테리어와 함께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다. 개업 전날 지역 기관장들과 노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열어 구민 신문에 미담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체인본부의 권유대로 판촉도우미들을 불러 점포 앞에서 3일동안 오픈 행사를 했고 전단도 개업 후 열흘 이상 돌렸다. 초기 홍보를 열심히 한 데다 인근에서 볼 수 없었던 대형 식당을 낸 덕에 우리 점포는 동네 화젯거리가 됐다. 가맹점 최고 효자 점포로 월 매출은 1억원을 웃돌았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 속에 하나둘 문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손님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짜다','맵다'며 음식 맛에 문제를 제기하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다 순서가 와서 어렵사리 테이블에 앉았는데 주문이 누락돼 음식이 안 나오자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가버리는 손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밀려오는 손님을 받는 데만 정신이 팔렸을 뿐 불만을 갖고 돌아가는 손님에 대해 성의 있는 대응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까탈스러운 손님들에 대해서는 '당신 안와도 올 사람 많아'라는 생각까지 했다. '새파랗게 젊은' 20대 고객이 삿대질을 해댈 때는 부아가 치밀어 표정이 일그러졌다. '회사 다닐 때는 40대 차장도 내 앞에서 어려워 했는데'라는 생각으로….음식 준비 시간과 함께 원가 등을 감안해 반찬도 맛보다는 만들기 편한 것으로 바꾸어갔다. 요리에 일절 취미가 없었기에 주방일은 전적으로 주방장에게 맡겼다. 종업원 문제도 골칫거리였다. 종업원들과의 관계는 임금으로 맺어진 '계약관계'로만 생각했다. 그들의 심리는 헤아리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시키기만 했다. '힘든데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건넨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봉급을 받은 다음날 한꺼번에 4명이 그만둔 적도 있었다. 자연히 '신삥' 종업원이 많아졌고 탕을 달라는데 찜을 내주고,찜을 달라는데 탕을 내주는 주문 착오도 왕왕 일어났다. 개업 1년 뒤부터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더니 지난해부터는 현상 유지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매출도 개업 초기에 비해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인테리어비,홍보비 등으로 보증금보다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현재로서는 대부분 회수할 생각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 한때는 경기 탓이려니,상권을 잘못 택한 것이려니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손님 많기로 유명한 강남의 한 아귀찜집을 가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가게는 만들기 번거롭다고 간단한 반찬으로 바꾼 데 반해 그 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반찬들이 맛깔스럽게 나왔다. 메뉴를 바꿀 생각으로 동태찜을 파는 곳을 가봤지만 그 요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의 문제는 고객이 원하는 요리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서비스가 소홀했던 것이다. 장사를 통해 '이윤'만 남기려고 했지 그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프랜차이즈 본부에 너무 의존했던 것도 잘못이다. 가맹점 계약 당시 그럴싸한 홍보 브로슈어를 펼쳐놓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창업시장은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하는 정글과 같은 곳이다. 사육사가 던져주는 고깃덩어리만 받아 먹는 데 익숙해진 퇴직자들에게 정말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