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 전 총서기 사망] "톈안먼사태 경제에 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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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쯔양 총서기가 권력에서 멀어져야 했던 1989년 6월4일의 톈안먼 사태.중국은 이를 '동란(動亂)'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방의 지원을 받은 일부 불순세력이 체제전복을 위해 일으킨 정치행위였다는 해석이다.
정치적 평가와는 별개로 톈안먼 사태를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학계 논의는 활발하다.
톈안먼 사태의 근본 바탕에 경제적인 문제가 깔려 있고,이 사건은 중국 경제정책의 큰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은 톈안먼 사태가 지난 86년부터 잉태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중국 경제는 당시 고정자산투자가 20%를 넘나드는 등 뚜렷한 과열현상을 보였고,88년 한해 소비자물가가 18.5%에 달하는 등 인플레에 시달려야 했다.
농촌에서 무작정 올라온 노동자들로 도시 실업 문제가 심화됐다.
당시 톈안먼광장으로 몰렸던 군중 가운데는 실업노동자들도 상당수 자리잡고 있었다.
톈안먼 사태는 결국 79년 말부터 급속하게 진행됐던 개혁개방의 부작용이 쌓여 터진 것이라는 게 경제학자들의 시각이다.
중국은 톈안먼 사태 이후 92년 초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에 이르기까지 치리정돈(治理整頓) 시기를 맞게 된다.
개혁개방의 속도를 줄이고 대외 개방창구의 빗장을 잠시 걸어 잠근 것.그렇다고 경제개혁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상하이에 증시를 설립하는 등 시장경제 확대 정책은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톈안먼 사태가 오히려 중국 경제에 약(藥)이 됐다"고 말한다.
당시의 속도 조정은 중국 경제가 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의 풍파 속에서도 8% 안팎의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제공했다는 시각이다.
중국은 특히 톈안먼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소비자물가 안정에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둬왔다.
상하이 사회과학원의 한 교수는 "중국 경제는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4∼5년을 주기로 과열-위축을 반복하고 있다"며 "톈안먼 사태는 그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이라고 말했다.
시위를 진압했던 세력들이 건재하고 있어 톈안먼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아직 나오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경제가 정상적인 수준을 벗어나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국지도부에 커다란 교훈으로 남아 있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