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에 국가공권력은 어느 선부터 개입해야하는가. 동거남의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살해된 40대 여성의 유족이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을 지적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함으로써 가정 폭력과 공권력의 대응 기준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로 불리며 대수롭지 않은 가정사쯤으로인식돼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뒤부터 `부부간 손찌검'도 엄연히형사처벌의 대상이 됐다. 여성계는 가정폭력을 단순히 부부싸움의 한 유형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가정폭력이 집 안에서 발생한다는 특수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엄연한 폭력행위임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연숙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인권사무국장은 "가정폭력은 엄연한 범죄행위로 부부싸움으로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면서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당사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부서진 집기나 폭행의 흔적이 있으면 반드시 데려다 조사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경찰에 신고를 할 정도면 이미 스스로 화해할 정도를 넘어선 폭력이 오간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신고만으로도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가정폭력방지법의 제정 목적이 "가정의 안정과 평화를 회복하고‥"로 시작되는데 이 부분도 피해자 보호나 피의자 처벌 보다 `화해'에 더욱 주안을 두는 배경이라고 신 국장은 주장했다. 여성계에서는 이 때문에 피해자 인권보호를 더욱 중시하고 경찰에게도 법원의영장없이 임시조치권을 부여하는 가정폭력방지법 개정안 마련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도 가정 폭력을 어느 수준에서 처리해야하는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남편이 때린다는 신고를 받고 가보면 `아무 일도 아니니 돌아가라'고 하는경우도 많고 경찰서 형사계에 일단 접수되면 기록이 남고 벌금까지 내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 돌연 태도를 바꿔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부부도 적지 않다는 것. 경찰 관계자는 "그런 부부들까지 억지로 경찰서로 데려와 조사해야 한다면 경찰서 형사계가 홧김에 신고한 부부들로 넘쳐날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경찰이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양 당사자에게 반드시 확인을 거쳐야 하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피해자 보호 격리 등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경찰의 변명도 합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가정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아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점도 문제"라며 "경미한 가정폭력이라도 경찰에 신고된 이후 집으로 돌아가서 일이더 커지는 경우가 있으므로 신중하게 판단해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현 기자 eyebrow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