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유가] 에너지 절약이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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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가 사상 최고수준에 올라선 이후 좀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각종 고유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에너지 과다소비형 산업구조가 온존하고 있는 데다 국민들의 에너지소비 패턴도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유가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도 정책처방의 '약효'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주유소에 걸리는 기름값이 ℓ당 1천5백원에 육박해도 길거리의 차들은 별로 줄지 않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현실화되고 있는 에너지전쟁시대에 대비한 산업구조 개편과 의식개혁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벗어나야 할 '에너지 소비 강국'
2002년 한국의 경제규모(국민총생산 기준)는 세계 1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에너지 소비량을 기준으로 하면 순위가 세계 10위로 3계단 상승하고,석유 소비량만으로 따지면 6위로 껑충 뛰어 오른다.
석유 수입면에서는 미국 일본에 이어 3위를 기록 중이다.
이처럼 에너지소비가 많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 때문이다.
한국 전체 산업에서 부가가치 1백만원을 창출하는데 드는 에너지 양이 1TOE(1t짜리 컨테이너 박스 20대 분량) 이상인 업종을 가리키는 에너지 다소비업종 비중은 26.3%에 이른다.
독일 21.8%,일본 20.4%,미국 18.6%보다 훨씬 높다.
에너지 과소비 성향은 가계에도 팽배해 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대부분 가계가 승용차를 보유하게 됐지만 연료 소비가 적은 경자동차를 선택하는 가계는 많지 않다.
경차 보급률은 프랑스 39%,이탈리아 28%대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7.2% 수준이다.
여기에 주택용과 교육용 에너지 사용량도 매년 7∼13%대의 증가세를 보이는 등 가계도 에너지 과소비형 생활구조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국제 에너지 가격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에너지절약이 경쟁력
지난해 한국의 에너지 수입액은 3백83억달러에 달했다.
연평균 원·달러환율 1천1백91원89전을 적용하면 우리 돈으로 45조3천억원선에 이르는 거액이다.
연간 정부 예산(올해 1백12조원)의 37% 정도가 에너지 수입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에너지 수입액을 자동차 수출물량과 비교하면 그 규모는 4백만대에 이른다.
올해는 국제유가가 급등한만큼 에너지수입액도 크게 늘어날 게 불가피하다.
따라서 사회 각 분야에서 에너지를 10%만 절약하면 국가 전체차원에서 38억달러(2003년 기준)에 이르는 재원을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작년 무역수지 흑자 1백55억달러의 21%에 이르는 규모다.
기업들은 에너지절약 자발 협약에 가입하는 등 에너지 이용을 합리화하고 국민들은 일상에서 에너지 과소비형 생활방식을 고쳐나가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에너지 절약이 '소득 2만달러'의 길
국내총생산(GDP) 1천달러어치를 생산하는데 투입된 에너지소비량(TOE기준)을 나타내는 '에너지원단위'라는 게 있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된 국가에서 이 수치는 당연히 낮아지게 된다.
지난 2002년 한국의 에너지원단위는 0.362를 기록했다.
대만(0.285),싱가포르(0.260),미국(0.227)에 비해 크게 높은 것은 물론 일본(0.107)의 3.4배에 달한다.
그만큼 산업구조가 후진적이라는 얘기다.
한국은 에너지원단위가 1990년(0.313)에 비해 2002년에 오히려 높아졌을 정도로 에너지 효율화 작업이 '함량 미달'인 상황이다.
이같은 에너지 과소비형 산업 및 소비구조는 결국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경제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에너지 및 노동 집약적 산업들은 여전히 경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데 반해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갈 산업은 나타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성장의 과실을 과다하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가계의 소비 패턴은 이미 웬만한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 이상에 올라가 있는 형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경제의 정체는 에너지 과다소비형 산업 및 소비구조와 적지 않은 인과관계를 갖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업의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정부의 체계적인 산업전략과 치밀한 지원,가계의 소비구조 개선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에너지전쟁에서 영원한 패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