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가장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에게 말했다고 보도된 내용이다.

고구려사 왜곡문제로 여론이 들끓던 지난주 여권의 한 고위당국자가 한 달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있었다고 모처럼 밝혔다.

"비가 그치면 우산의 소중함을 잊는다"고 미군의 한국 주둔을 치켜세운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곧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구름처럼 지나간 해프닝이다.

비록 사실이라 해도 얼마의 의미를 부여해야 할 지 모를 발언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앞으로 우호관계를 돈독히 해야 할 나라로 첫째가 일본, 그 다음이 중국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의 화법은 가는 곳마다 변화무쌍이고 또한 수시로 "언론의 와전"이 있는지라 진짜 정책노선을 말하는 것인지 그저 한 말씀의 인사치레인지 항상 혼란스럽다.

지난주 정부는 오랫동안 질질 끌던 이라크 파병 약속을 이행했다.

이를 무슨 큰 죄라도 짓는 양 소리소문도 없이 보내버렸다.

그 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내년 국회에서 이들을 반드시 불러들일 것이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부는 벌레 씹은 얼굴로 동맹의무를 말하고 여당은 '반미 성명'을 내며 뒤에서 눈을 부라린다.

이렇게 표리부동(表裏不同)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된 것이 오늘날 한·미관계의 모습이다.

이러한 때 고구려사 문제가 불거진 것은 그나마 행운인지 모른다.

여당의원 63%가 장래를 기대한다는 중국의 본색을 엿볼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원(元)나라 때 고려가 왕호(王號)를 받고 격(格)을 낮춘 이래 말 그대로 반도의 종주국 행세를 해왔다.

17세기 표류해온 이방인 하멜이 조선왕국에 대해 받은 최초의 인상은 "조정이 일년 열두달 준비하고 걱정하는 것이 오직 중국에 사신 보내는 일"이었다.

청일전쟁의 패배로 그 고리가 끊어졌다.

그리고 6·25전쟁 때 중공군을 투입해 한반도를 다시 분단시키는 일로 중국은 다시 등장했다. 이들은 수십만 남한인을 희생시키기도 한 이 역할에 대해 수교 이후에도 유감 한마디 표명한 사실이 없다.

그때 아무 말 못하던 나라가 여중생 두 명이 죽은 장갑차 사고에는 온갖 난리소동의 쇼를 부리며 미국을 추궁해 대통령 이하 모든 종류의 사과를 다 받아냈다.

오늘날 중국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동시에 중화주의 대국 근성도 같이 자라서 벌써부터 주변국가에 연고를 주장하고 '소 변방국'으로 치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 이면에 한국은 자주국방과 민족주의라며 미국과는 줄 끊어진 연이 되려 한다.

향후 더욱 거대해지는 중국은 이런 이웃을 가만 놔둘 것인가.

앞으로 얼마나 수치스러웠던 한반도의 과거사를 들추고 지배적 위상을 자처하고 주장할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한반도 통일의 상황이 임박할 때 중국은 어떤 이웃이 될까.

반도에는 중국 영향력하의 북한과 국가경제력이 수십배 우월한 남한이 있다.

어떤 형태가 되든 북쪽이 남쪽의 물적 정신적 토대에 편입되지 않는 통일은 생각할 수 없다.

오늘날 남한은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헤매지만 그 뿌리와 장래가 존재하는 곳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과 세계체제이다.

이런 통일의 결과를 중국은 받아들일 것인가.

미국과 패권을 다툴 의향이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에 분리주의 정부를 유지하고 공작하고 영향력을 행사함이 중국의 선택 아니겠는가.

미국은 과거 그 영향력에 비춰 얼마나 빗나간 지배행태를 보였는가. 한반도 통일을 가장 저해할 세력은 누구인가. 그러나 좌파세력들은 여중생을 '고의로' 살해하고 북녘 동포를 핍박하고 통일을 막는 제국주의 점령군의 이미지를 집념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한국전쟁에서 미국은 근 5만명의 사망자를 냈고 한국 또한 월남전에 5만명의 전투부대를 보냈다.

이렇게 쌓은 50년간의 혈맹의 자산을 우리는 헌신짝처럼 버리려한다.

일본은 원폭세례까지 받은 미국의 적대국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풀려 나오는 미군기지를 모두 거두어 안보와 경제의 이익을 챙긴다.

누가 흘린 피의 자산을 누가 거두어 살찌는지 실로 기막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