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에 비타민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 줄 아니?"

"싫어,나 아까 비타민 먹었단 말이야."

옆자리의 엄마와 아이가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를 들으니 피식 웃음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식사시간이면 늘 반찬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오이며 당근,파 등을 젓가락으로 골라내기 바빴고,이런 나의 편식은 어머니의 꿀밤을 감수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인생이 너무 암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에게는 꿀밤의 아픔을 달래주는 콜라가 있었다.

아마 콜라만 먹고 살라고 해도 망설임없이 그러했을 것이다.

먹기 싫은 밥과 마주 앉으면 언제나 콜라가 먼저 떠올랐던 나는 콜라에 밥을 말아먹으면 어떨까 하는 가히 천재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끈질기게 어머니를 졸라댔다.

나의 소원이 이뤄진 날,그 행복은 콜라밥(?) 한 숟가락이 넘어가기도 전에 끝나버렸고,어머니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처참한 슬픔을 삼켰다.

결국 나는 그렇게도 소원하던 콜라밥을 모두 먹어야만 했으며(콜라밥의 실체가 궁금한 사람은 꼭 한번 시도해 보시기 바란다),소원은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어린시절 식생활은 편식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문화생활은 완벽한 혼식주의였다.

연극,영화 감상과 다양한 책 읽기,그리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클래식 연주회장도 자주 드나들었다.

물론 나는 연주가 시작되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의자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들었고,눈을 떠보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죄송스러웠지만 그 시절 나에게 클래식음악 감상은 고역이었으며,내 인생은 여전히 고해 그 자체였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어떤가.

어린시절,뒤통수에 혹을 만들면서도 먹기 싫어하던 야채를 아무 거리낌없이 먹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나름대로의 맛을 찾아 음미하고 있다.

자장가였던 클래식음악이 내 생활의 전부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편식이란 어쩌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엉뚱한 선입관과 편견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일 것이다.

문화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화적인 편식을 막기 위해 가끔은 아이들과 클래식 음악식단을 함께 즐기는 부모가 되어봄은 어떨까.

어린 아들이 즐긴 10여분의 감동을 깨지 않기 위해 더운 여름날,아이를 안고 공연장을 나서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내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어머니,맛난 혼식 잘 먹었습니다!

김용배 예술의전당 사장 ybkim@s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