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술품을 조금씩 사 모으기 시작한 것은 시부모님 모시고 시집살이를 하면서 부터다.

미술대학을 다니면서 꿈꿔왔던 '예술가'와 '예술'에 대한 미련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러다 엉겁결에 '등 떠밀리다시피' 시작한 갤러리 일이 벌써 7년째다.

처음에는 그냥 갖고 싶은 작품을 사고,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를 열고,지인들께 알음알음 파는 것으로 만족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화랑사장이 아니라 컬렉터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아마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는 핀잔일게다.

아직도 가까운 분들은 못미더운 듯 걱정을 많이 해주신다.

하지만 어떤 때는 아마추어 같다는 질책이 더 듣기 좋았다.

조금 손해나지만 좋은 전시를 하고 유망한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며 이익이 크게 나지 않더라도 투자가능성 높은 작품을 가까운 고객에게 소개하면서 나름대로 재미도 쏠쏠했다.

더구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조금씩이지만 작품도 그럭저럭 판매됐던 것 같다.

내 눈에 비단인데 남 눈에 삼베로 보일리는 만무한 것처럼,마음에 드는 작품,앞으로 '뜰 것 같은' 작가를 가까운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면 흔쾌히 사주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규모가 조금씩 커지면서, 그리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갤러리 운영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다.

이전 같으면 작품을 살만한 컬렉터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기 침체의 여파로 사정이 어려워진 고객들도 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아니 속내를 들여다보면 현금 보유량은 더 많아진 것 같은 고객들도 지갑을 꽁꽁 여미고 있다.

IMF 때에 비하면 외환보유량도 충분하고 유동자금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IMF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려운 것 같다.

미술시장도 IMF 때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작품을 되팔려고 하고,좋은 작품은 금방금방 팔리면서 거래 자체는 제법 활발했었으나 최근에는 작품을 팔려는 사람도,사려는 사람도 드물다.

주변의 오래된 컬렉터들을 보면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충분히 되는데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를 아예 사려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 소비와 투자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친다.

갤러리에 자주 오시는 한 분은 "IMF 때 물에 빠진 것이라면 지금은 늪에 빠진 것 같다"면서 "물에 빠졌을 때는 허우적거리면서 빠져나왔지만 늪에서는 허우적거릴 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다"고 털어놓는다.

불확실한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그냥 현금을 쥐고 있거나 아니면 해외에 투자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한다.

게다가 내수 활성화,소비 진작을 강조하면서도 아직 돈을 쓰는데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하소연이다.

미술시장이 이런데도 전시는 해가 거듭될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샤갈전,달리전 같은 흥행성 대형 전시도 늘고 있다.

미술시장은 불황인데 전시는 증가하는 이른바 '미술판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를 만한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불황은 계속되는 데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인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경제용어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도 어쩌면 미술시장의 불황이 한국경제의 그것과 사뭇 닮아 있기 때문이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6개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유일한 성장엔진인 수출 증가세가 둔화돼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잿빛 전망은 그래서 경제를 잘 모르는 나에게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강남에서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사는 고객들은 대부분 부자다.

이 고객들이 투자에 대한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소비마저 남의 눈치를 봐야 하고 일부지만 정부에 대한 반감까지 겹쳐 주머니를 좀처럼 열려고 하지 않는다.

'부자'가 마치 '죄인'마냥 납작 엎드리고 있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말로만 소비 진작,투자 활성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인데 지금 같은 사회적 분위기로는 정말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