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침체에 빠진 증시를 살리면서 인플레 압력도 헤쳐가야하는 이중고에 직면해있으나 정작 사용할 수 있는 `실탄'이 소진된 상태라고 파이낸셜 타임스 9일자에 게재된기고가 지적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 국제부장으로 현재 로위국제정책연구소에 연수중인 `그린스펀 전문가' 피터 해처는 기고에서 이같이 분석하면서 그린스펀이 이런 상황을 자초했다고 강조했다.
해처는 그린스펀과 월가를 집중 조명한 `버블맨'이란 책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다음은 해처의 기고를 간추린 것이다.

그린스펀은 저금리를 통해 지난 3년여 미 경제에 이례적인 자극을 제공해오다지난 6월부터 금리를 `보다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대장정에 나섰다.

그러던 차에 7월의 미 고용 통계란 복병에 걸린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에 따르면 오랜만에 0.25%포인트 상승해 1.25%가된 연방기금 금리는 미국의 현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약 4% 수준까지 회복돼야 `정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간 월가에서는 연말까지 금리가 2%로 올라가지 않겠느냐는 것이 중론이었다.

미국의 신규고용이 6월에 감소한데 이어 7월에도 월가의 예상치보다 훨씬 낮게나온 상황에서 최대의 관심은 `금리가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면서도 과연 경기 회복세를 이어갈 수 있겠느냐'는데 맞춰지고 있다.

이와 관련, FRB의 골칫거리는 두 가지다.
증시 약세와 인플레 압력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 추가인상 여부와 맞물려있음은 물론이다.

그린스펀은 가뜩이나 증시가 침체된 상황에서 투자 관망세가 확산되지 않도록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다.

그러나 인플레 압력도 만만치 않다.
고용 통계 등의 타격으로 금값이 온스당 7달러나 뛰어 402달러대에 달한 상황에서 기름값도 배럴당 기록적인 45달러선에 육박한 것이 현실이다.
인플레 압력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FRB로서는 인플레 진정을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겠지만 이것은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FRB가 기댈 수 있는 구석은 여전히 남아있다.

고용 통계가 나쁘게 나오기는 했으나 이것을 침체의 전조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지표들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7월의 자동차 및소매 판매 지표들이다.

그린스펀의 고민은 장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온 상황에서 지금의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실탄'이 사실상 소진됐다는 점이다.

지난 96년을 돌이켜 보자. 그린스펀은 당시 `증시거품'을 경고하면서 그 유명한"비합리적 풍족함"이란 표현을 썼다.
그린스펀은 그러나 자신의 이런 입장이 정치적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해 결국은 거품을 수용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명분으로 신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거품이 터지길 기다렸다.

이후 3년간 거품은 대공황 시절의 두배 이상으로 부풀려졌으며 마침내 터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린스펀은 이례적인 조치를 취해 장기간의 저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FRB가 통상적인 통화 정책을 취할 수 있는 옵션이 거의 소진된 것이다.
한마디로 그린스펀이 지금의 어려움을 자초한 셈이다.

미국의 재정적자도 그린스펀의 입지를 좁히는 또다른 요소다.
미의회예산국에따르면 미국의 올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4.2%에 달하는 기록적인 4천780억달러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나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모두가 집권하면 임기중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결같이 공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해 경기 회복을 뒷받침할 수도 있다.
달러는 지난 2년간 다른 주요 통화들에 대해 가치가 15% 가량 떨어진 상황에서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폭락일 경우는상황이 달라진다.

그린스펀으로서는 이미 거시경제 차원에서 쓸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동원한 셈이다.
따라서 더 이상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없는 상황에서 그린스펀은 더 이상 나쁜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할 수 밖에 없는 딱한 처지다.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