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에서는 우리나라 학벌주의의 원인이 서울대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에 대해 공감하는가?"

지난 5월 중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가 전국의 만20세 이상 성인 남녀 8백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중 한 문항이다.

응답자의 55%가 '공감한다'고 답변하고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9%였다. 일부가 아니라 과반수가 서울대를 학벌주의의 원흉으로 본 것이다.

이런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교육혁신 작업에 참여한 일부 인사들이 서울대를 실질적으로 죽이는 국립대 공동학위제와 교수공동선발관리 등을 주장했다.

참여정부와 코드가 맞는 이 주장은 사회적 아젠다로 부상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이제 대학까지 하향평준화하겠다는 거냐는 비판여론이 거세자 논란의 진원지인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가 최근 해명 자료를 냈다.

지방에 있는 국립대가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적극 활용토록 유도하자는 취지에서 전문위원회 차원에서 논의됐다는 것이다.

이달 초 교육부총리는 서울대를 죽이는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울대처럼 좋은 대학이 여럿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하나로 묶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대학끼리 서로 경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교육부총리의 이런 균형 잡힌 정책시각이 이 정부 내내 지속되길 바라마지 않는다.그러나 이 정부의 성향으로 보아 별로 미덥지 못한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학연이 지연 못지않게 끈질기고 서울대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려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의 질,교수 연구수준,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서울대가 세계 일류 대학들과 현격한 격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교육정책이 최고의 경제정책"이라고 했다.

장기적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창의력을 북돋는 수준높은 교육이다.수준높은 교육을 위해선 세계적으로 좋은 대학들이 여러 개 나와 경쟁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좋은 대학들이 여러 개 나오게 함으로써 서울대 패권주의를 죽이는 유력한 방안이 있다.

사립대학에 기여입학제를 허용하고 교육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세계 일류 대학으로 올라서는 지름길은 뭐니뭐니해도 결국은 획기적인 재원확충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발전기금은 고작해야 미국 명문대의 1∼2% 수준이다. 이런 '꼬방살림'으로 세계적인 대학으로 올라서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다.

사립대학에 기여입학제를 허용하면 상위 사립대학들은 몇 년 안가서 세계적 수준의 재원을 갖춰 최우수 교수와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다.

10년도 안돼 연대 고대 이대 포항공대 등이 서울대를 우습게 알 것이다.

이 대학들이 국내에 진출하려는 외국 명문대와 제휴하면 수준 격상은 더욱 눈부실 것이다.

기여입학제에 따르는 대학서열화는 세계화시대에 어차피 감수해야 한다. 나머지 부작용은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기여입학제의 혜택은 일반 국민의 예상 이상으로 크다.

사립대학은 사립대학 답게 자율적인 학생선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부정적인 국민여론과 중위권 대학 이하의 맹렬한 반대를 들어 기여입학제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부정적인 국민여론과 맹렬한 반대를 진지하게 수용해야 할 분야는 행정수도 이전계획이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치고 나갈 것은 성급한 행정수도 이전이 아니라 교육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격상시키는 기여입학제 허용이다.

"기득권 계급을 형성한 서울대, 나아가 'SKY대'를 어떻게든 손봐야 고질적 학벌주의가 타파되고 지방대학들이 산다."

나중에 교육부총리가 바뀔 경우 단선적 시각이 다시 불거져 쓸데없는 풍파를 일으키고 사회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기득권 해체니 세력교체니 하는 말들을 아무렇게나 쓰고 있는 정부이기 때문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영국의 노동당이 옥스퍼드대나 케임브리지대를 폐교하자고 주장한 일은 없다.

중국에서 베이징대, 일본에서 도쿄대를 평준화하자는 얘기도 물론 없다.

각 부문에서 시대를 거스르는 하향평준화 코드로 사이비 개혁을 추진하니까 시장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경제가 불안한 것이다.

ksah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