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사이에서 '서구형 성과주의 제도'에 대한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다. 사원들의 '근로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지난 90년대 초부터 기업들이 본격 도입한 성과주의가 오히려 사원의 사기를 꺾고 조직을 와해시키는 등 부작용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성과주의를 도입한 회사는 전체 기업의 85%선에 달하지만, 완벽한 서구식 성과주의를 생산현장에서 실시중인 기업은 1%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종신고용제 등 '일본식 경영'을 고집해온 도요타 캐논 등이 사상 최고 이익을 경신하면서 '일본경제의 부활'을 이끌자 '일본형 인사제도'에 대한 복고적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 서구식 성과주의 부작용 많다 =최근 일본능률협회가 개최한 인사제도 평가회에서 성과주의는 일본기업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인사책임자들은 성과주의 도입 후 '개인 플레이가 늘어나고, 팀 플레이가 소홀해졌다' '사원들이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한다' '개인 평가를 둘러싸고 상사와 부하, 부원간 인간 관계가 악화됐다'며 한결같이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일본 근로자들은 전통적으로 돈이나 직위보다 '보람'을 찾기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성과주의를 도입한 뒤 '일할 의욕'을 꺾는 사례가 많았다는 평가다. 게이오대학의 다카하시스케 교수는 "인건비를 삭감하거나, 인원을 줄이려는 의도에서 성과주의를 도입할 경우 부작용이 크다"면서 "부정적 의미의 성과주의가 아니라 근무 의욕을 자극하는 긍정적 제도로의 활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본식 성과주의 인기 확산 =일본인에게는 일본식 인사제도가 좋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성과주의와 종신고용을 양대 축으로 하는 캐논의 '실적 종신주의'다. 캐논은 2001년 연공서열제를 버리고 '목표 관리제도'를 도입했다. 직급을 폐지하는 대신 일의 성과에 따라 연봉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실적에 따라 평가하되 철저하게 종신 고용을 지키겠다고 약속해 사원들의 불안감을 없앴다. 해외근무 경험이 많은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은 "연봉만 많이 주면 직장을 옮기는 서구형 성과주의 시스템은 인재 유출을 초래하기 때문에 사원들이 안심하고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게 근로 의욕을 자극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계 2위의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자동차의 오쿠다 히로시 회장도 "사원을 자르려면 차라리 내 목을 치는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종신고용제를 옹호하고 있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