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60주년을 맞아 6일제1 공영방송 ARD는 2차대전과 관련한 마지막 금기인 이른바 '저주받은 아이들'을 다룬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패전국인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노르망디 기념식에처음 초청받음으로써 집중 조명되고 있는 `유럽의 화해'가 마무리되기에는 아직 청산돼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저주받은 아이들'은 독일군의 파리 점령기에 프랑스 여인과 독일군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20만명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이제 만 60세를 넘겼으며, 아직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이들의 어머니는 연합군의 파리 해방 이후 머리를 삭발당한 채 거리에 끌려다니며 `나치의 창녀'로 조롱당하고 감금됐다. 자신이 스스로 지은 죄는 없어도 `전쟁이남긴' 아이들은 버림을 당하고 아버지가 누구인 지도 모른 채 자라면서 `어머니의업보'를 대신 치러야 했다. 유년기와 청소년 시절에 이웃이나 교사들은 물론 가족으로부터도 잡종이나 사회의 기생충으로 까지 배척당했다. 아직도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 지를 모르는 이들의 일생엔 씻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현재 61세인 다니엘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한 해 전에 당시 22세인 프랑스 여성과 24세인 독일군 장교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손자의 태생을 치욕스럽게 여긴 외할머니는 한동안 그를 닭장 속에 넣어둔 채키웠으며, 그는 `망할 독일놈의 자식'으로 조롱받으며 자라났다. 그의 외가 마을의 시장은 "제비는 프랑스에서 자식을 갖더라도 데리고 날아가는반면 `망할 독일 놈'은 제 자식 새끼를 이곳에 남겨두고 떠난다"고 말했다. ARD에 따르면 노르망디 상륙 작전 60주년에 즈음해 프랑스 언론인 장-폴 피카페가 이 `저주받은 아이들'의 운명을 조사하고 관계자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내 프랑스 사회에 파문을 던졌다. 피카페는 프랑스 사회가 수십년 간이나 애써 떨쳐버리려 하고 정부가 외면해온어두운 역사의 단면을 드러내며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ARD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동안 프랑스 역사 기술에서 회피되어온 `어두운 오점'과 `전쟁이 남긴 아이들'이 어린 시절 겪은 슬픔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 지, 그리고 그의 책이 이들에게 어떤 용기를 줬는 지를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의 출신에 대해 거짓말 해야만 하는 치욕스런 운명을 안고 살았던 20만 명의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60세가 넘은 노인이 되어서야 이 책을 일고 용기는 내어자신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내게 됐다. 피카페는 현재 프랑스인 가운데 최소한 1백만 명은 당시 프랑스 주둔 독일군이었던 조상의 피를 갖고 있다면서 `저주받은 아이들'의 대부분은 독일군의 성폭행이아니라 프랑스 처녀와의 `사랑'의 결과로 태어났다고 밝혔다. 점령 초기 독일군은 유화적 정책을 펴 주민들과의 관계가 매우 좋았으며, 프랑스 사회도 대체로 이들을 친근하게 대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프랑스 역사는 레지스탕스의 항전과 함께 점령군과의 `친화'라는 이중의 진실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저주받은 아이들'의 뿌리 찾기 노력이 이어졌으며, 피카페의책은 적지 않은 이들에게 용기를 줬다. 독일군 참전 및 전몰 용사 친족 관련 독일관청 WASt도 이들의 과거 찾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대부분 아버지의 성은 모르고 이름만 알거나 단편적인 기억만 갖고 있어도 적지않은 수가 아버지를 찾아낸다. 피가 섞인 형제자매와 접촉하는 경우도 있다. 생존한 아버지가 아픈 과거를 피하거나 독일 가족들이 유산 상속 요구를 두려워한사코 피하는 경우도 있다. 피카페는 자신의 정체성의 잃어버린 반 쪽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60-70%가 성공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아버지가 자식들을 인정하지 않거나 할 수 없을 상황일 경우엔 최소한 독일이라는 나라가 그들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남긴 아이들'은 사실 프랑스 뿐아니라 전 유럽의 해결 과제이다. 또 과거의 역사 만은 아니다. 자신의 태생 때문에 배척되는 수백만 명의 운명을 도덕적,정치적으로 회복하는 이 일은 여전히 공개 거론되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의 베르겐시(市)와 학자들은 수년 전 2차대전 당시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전쟁이 남긴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전쟁과 아이들의 정체성 프로젝트'라는 이 단체엔 의사와 심리치료사, 역사가,사회사업가, 정치인,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아직도 세계엔 많은 아이들이, 어머니가 적군 병사들과 관계를 가졌거다거나 또는 유고전쟁 등에서 전쟁의 수단으로 사용된 바 있는 성폭행에 의해 태어났다는 이유로 차별과 멸시를 받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