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못합니다. 조상들 보기가 부끄러워 밤마다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이제는 정말 제 이름을 찾고 싶습니다." 북파공작원 백봉의(63)씨는 6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윤준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30여년의 세월이 한스러운 듯 이제라도 떳떳하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놓고 살고 싶다고 밝혔다. 백씨는 20대 후반이던 1968년 1월초 `1년만 고생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월남에도 갈 수 있다. 군대를 안갔다 왔으면 병역도 해결된다'는 말을 듣고 이른바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당시에는 북파공작원인줄 몰랐고 영등포.안양 등지에서 훈련을 하면서 어렴풋이 감을 잡았다"며 "집안사정으로 10대때 가출해 고향에 가기도 쉽지 않았고 입영 통지서도 직접 못받아 병역도 차일피일 미룬 상태였다"고 말했다. 백씨는 이후 북한에도 수차례 잠입하는 등 북파공작원 활동을 하게 되고 공로를인정받아 훈장과 표창장 등을 받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1년만 일하면 된다는 약속과 달리 군은 백씨를 놓아주지 않았고, 백씨는1973년까지 북파공작원 활동을 하게 됐다는 것. 그는 "군이 1년 계약을 어기고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이 때문에 5년여간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하며 하사 계급까지 달았다"며 "73년도에 잠시 외출하겠다는 핑계를대고 부대에서 도망갔다"고 말했다. 이후 백씨는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윤준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1960년대 중반 가출해서 전국을 떠돌던 시절 우연한 기회로 남의 집 양아들로들어갈 기회를 얻었고 그때 윤준식이라는 이름으로 그 집 호적에까지 올랐다. 백씨는 "부대를 탈영한 뒤 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전에 윤준식이라는 이름으로 호적을 올렸던 것을 기억하고 주민등록을 대행해주던 사설업체에 돈을 주고 부산시민 윤준식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을 떠돌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이사했고 군이 또 나를 붙잡아 북한으로 보낼 것 같았다"며 마음 졸였던 지난 시절을 털어놨다. 그렇게 30여년 동안 윤준식으로 숨어살던 백씨는 16대 국회에서 `특수임무 수행자 보상법'이 통과돼 명예회복의 기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관련서류 준비를위해 고향을 방문했다가 `백봉의'는 이미 사망했다는 기막힌 사실을 접했다. 그는 "지난달 HID북파공작원 유족동지회를 통해 보상 및 명예회복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군에서는 백봉의라는 원래 신분으로 북파공작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 서류를 준비하다 보니 이미 나는 죽어있었다"고 말했다. 백씨는 "군에서 도망친 후 군 기관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 불안한 마음에 1984년에 사망신고를 해버렸다는 가족들의 야속한 답변만 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현재 법원에 호적회복신청을 했으며, 군에도 서류를 갖춰 정식으로 보상신청을 할 계획이다. 유족동지회 상근직원 이성학씨는 "민간인 출신으로 구성된 북파공작부대가 많았다"며 "이들에 대해 정부는 적절한 지원과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기자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