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의 여파로 대한민국 '비즈니스 1번지'인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 오피스빌딩가에 빈 사무실이 급증하고 있다. 건물마다 '임대' 현수막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다. 몇 개월째 내걸린 탓에 빛이 바랜 현수막이 볼썽사나울 정도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테헤란로에 몰렸던 회사들이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떠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인근 S공인 관계자는 "사무실 임차를 문의해 오는 전화조차 끊긴 지 오래"라며 "하루가 다르게 빈 사무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회사의 업종도 많이 변했다. 1∼2년 전까지 주류를 이뤘던 벤처·금융·컨설팅회사 등이 떠난 자리를 다단계회사 기획부동산 대출업체들이 메웠다. 부동산 투자자문회사인 알투코리아의 이현주 차장은 "테헤란로 주변은 경기를 가장 잘 반영하는 곳"이라며 "특히 대형 빌딩보다 중소형 빌딩의 공실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빈 사무실 늘면서 임대료도 떨어져 경기침체에다 5∼6월 비수기까지 겹치면서 임대물량이 쏟아지고 있다. 밤이면 '불꺼진 테헤란로'의 모습은 더욱 뚜렷하다. 역삼동 한일부동산 관계자는 "그동안 강남권에서 빌딩 신축이 많았던 데다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중소업체들도 사무실 규모를 축소하는 분위기여서 빈 사무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난이 심화되면서 임대료도 떨어지고 있다. 테헤란로 일대 사무실의 연간 임대료는 평당 4백만원 수준이지만 요즘은 3백만∼3백50만원까지 협상을 통해 낮출 수 있다. 평당 최고 8백만원까지 나가는 신축 사무실의 경우엔 수요 자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휘닉스공인 관계자는 "빌딩마다 20% 가량은 비어있는 것 같다"면서 "기존 입주자들 몰래 새 입주자에게 임대료를 깎아주는 임대업주들이 많다"고 말했다. 20평형대 오피스텔의 경우 올해 초까지 보증금 1천만원에 월 임대료 90만∼1백20만원대였지만 지금은 월 7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금싸라기 땅에 아파트모델하우스만 들어서 테헤란로에 새로 진입한 업종은 주로 기획부동산,다단계회사,대출업체 등이다. 역삼동 미성공인 관계자는 "다단계회사 및 대출업체 등이 더러 입주할 뿐 벤처나 첨단업종은 별로 들어오지 않고 있다"면서 "임대업자들이 한때 다단계회사의 입주를 꺼렸지만 지금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싸라기' 자투리 땅에는 건설업체의 모델하우스들이 들어서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과 역삼역 주변에 들어선 모델하우스만 해도 SK 대우 두산 한신공영 쌍용 이수건설 등 10여개에 달하고 있다. 또 역삼동 후면도로 양옆으로는 최근들어 오뎅바 꼬치구이 김밥집 등 생계형 소형점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역삼동 한솔부동산 박광복 과장은 "요즘 5천만∼1억원 정도를 가지고 상가를 임대하려는 사람이 부쩍 늘면서 주로 오뎅바 같은 생계형 점포 위주의 임대는 그런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