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일부 주한미군을 이라크로 옮기는 문제를 우리 정부에 제의함에 따라 그동안 양국간 협상에서 한국측이 모든 이전비용을 부담하는 쪽으로 사실상 결론난 용산기지 이전협상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4월부터 용산기지 이전문제를 놓고 진행해온 협상에서 한미연합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를 한강이남으로 완전히 옮기되 모든 이전비용을 한국이 부담한다는 데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정부는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주요 격변기마다 외국군이 주둔해 민족수난사를 그대로 간직한 용산기지를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옮겨달라고 우리가 요청했기 때문에 이전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용산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미군들이 고스란히 경기도 평택으로 옮겨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달까지 무려 8차례에 걸쳐 한미 미래동맹 정책구상회의를 가졌던 것이다. 정부는 또 2006년까지 용산기지를 한강이남으로 완전히 옮기기로 하고 이전에 필요한 법적토대인 포괄협정(UA)과 이행합의서(IA) 작성을 위한 협의를 거쳐 가서명 직전 단계에 와있다. 정부는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9차 미래동맹 회의에서 UA 및 IA에 가서명한 뒤 이를 17대 국회에 상정해 승인받는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미국이 6월30일로 예정된 이라크 주권 이양을 앞두고 보다 강력한 안정화 작전에 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일부를 이라크로 빼낸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통보함에 따라 이러한 시간표는 전면적인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한국측이 모두 부담키로 한 한미 양국간 합의사항의 전제조건이 변경돼 비용의 한국측 전액 부담이 형평성 논란을 촉발시킬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전비용의 한국측 부담을 강력 반대해온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면서 기지이전 논의에 강력한 제동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그동안 58개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용산기지 이전비용 전액을 한국이 부담하고 미 2사단 평택 이전을 포함해 320만평의 대체부지를 제공하는데 반대한다"며 용산기지 이전 전면 재협상을 촉구해왔다. 용산기지 이전비용은 새로운 시설에 대한 정밀조사 결과가 나와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으나 대충 30억-40억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한미 군당국은 잠정적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는 기지이전 비용 부담은 국가간 약속인 만큼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주한미군 감축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국민을 설득시킬 마땅한 논리 개발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1987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것을 계기로 공론화된 용산기지 이전문제는 이후 한미간 협상을 통해 이행되는 듯 했으나 비용문제 때문에 막판에 무산된 적이 있다. 양국은 1990년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완전히 옮기기로 합의하고, 1991년 미 8군 골프장을 폐쇄하는 등 합의이행을 위한 준비작업을 본격 진행했으나 미국이 이전 비용을 과도하게 요구해 1993년부터 이전 계획이 사실상 중단된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전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국민여론에 밀려 이 문제를 재론할 경우 1년 이상 추진해온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경기도 동두천 일대에 주둔중인 미2사단 및 용산기지 이전 대상지역인 평택 주민들이 토지수용에 강력 반발해 이전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 감축문제가 불거진다면 당초 예정된 2006년까지 이전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전비용 문제가 한미간 협상에서 재론될 경우 당초 6월 종료될 예정이었던 용산기지 이전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양국간 갈등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군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어 주한미군의 이라크 투입을 위한 양국간 협상결과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