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국제의회연맹(IPU) 총회장은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제시카 랭의 연설로 술렁거렸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전세계 국회의원 여러분들은 새로운 법을 만들기 보다는 아동학대에 맞서 싸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갈수록 만연되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폭력과 학대, 그리고 노동착취는 그 어느 사안보다도 중요하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아동학대문제는 일찍이 1989년 유엔총회에서 '아동권리에 대한 국제협약'을 채택하면서 국제적인 이슈로 등장했다. 이 협약은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각국은 적절한 입법적 행정적 교육적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하고 있는데,일부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아동보호'가 그저 공염불에 그치는 사례가 허다하다. 아동학대가 생각보다 심각한데도 사회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가정내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데다 친부모가 가해자이기 때문인 것 같다. 가정내의 스트레스가 곧바로 자녀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고 부모의 실직과 부부간의 갈등,아동의 정신 및 신체적 장애가 있을 경우는 학대의 정도가 더욱 심한 것으로 조사돼 있다. 특히 빈곤은 학대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IMF 이후 아동학대가 부쩍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신고건수만을 따져봐도 해마다 20% 이상 늘고 있다고 하는데 지난해는 5천건에 육박했다. 그러나 신고건수가 실제보다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동학대문제는 이제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직도 우리 부모들은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고 내 자식은 내 맘대로 한다"는 의식이 강해 죄의식없이 자식을 학대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상습적인 아동학대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으로 '아동복지법'을 개정했다. 이 법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각성이 우선돼야겠지만 이웃의 신고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미국에서는 학대받는 아이의 사정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는 교사나 의사까지도 처벌하고 있다. 눈여겨 볼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