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내 자동차 가전 등 내구소비재 업체들이 원자재 가격급등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으면서도 가격인하 전쟁에 내몰리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설비과잉이 원인이다. 중국은 올들어서도 지난 1~2월 고정자산 투자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3% 증가할 정도로 과잉투자가 지속되고 있다. 자동차 시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해 세계 3위로 부상한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다국적기업은 물론 중국기업들의 경쟁적인 투자확대로 올해 처음으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90년대말부터 공급과잉 상태에 놓인 가전시장은 미국 업계의 반덤핑 제소 추진 움직임으로 수출여건이 나빠지면서 내수 경쟁은 이미 출혈단계다. 현지 진출한 한국기업들도 갈수록 악화되는 수익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확산되는 가격인하 전쟁 중국내 승용차 가격은 지난해 평균 9.05% 떨어졌다. 그런데도 올들어 50여종의 승용차가 다시 가격인하에 돌입,이미 10%가 넘는 인하율을 보이고 있다. 가격인하의 폭과 속도가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수입자동차 가격도 관세 인하,수입쿼터 허가증 수수료 인하,물량 급증 등으로 이달 들어서만 최고 15% 인하되는 등 중국 자동차시장이 가격인하 회오리에 휘말리고 있다. TV도 마찬가지다. 프로젝션TV,PDP(벽걸이)TV 등 첨단제품이 가격인하를 선도하고 있다. 이달초 도시바,마쓰시타,필립스 등 외국업체들이 일제히 가격을 평균 10% 내리면서 토종업체들이 주도해온 가격인하전에 동참한 것. 도시바의 경우 중국 프로젝션 TV시장에서 작년초까지만 해도 1위를 차지했으나 LG전자,창훙에 이어 3위로 밀려나자 가격인하전에 본격 뛰어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전자레인지도 가격인하전에 휘말렸다. 중국 최대 전자레인지 제조업체 거란쓰가 최근 제품가격 인상 계획을 돌연 철회,파격적인 가격인하를 단행한 것. 이 회사는 고급 전자레인지 신제품 가격을 종전 8백위안에서 4백68위안(1위안=1백45원)으로 40% 이상 낮춰 출시했다. TCL은 최근 에어컨 값을 올리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가격인하 추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위기다. 중국 언론은 "에어컨 제조원가는 작년 8월 이후 10% 정도 올랐다"며 "그러나 작년말 1천3백위안 하던 모델이 1천위안으로 떨어지는 등 가격인하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심각한 공급과잉 중국 주요 산업의 공급과잉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JP모건은 중국 자동차시장은 올해 공급이 수요를 7% 초과하고 내년에는 공급과잉이 22%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 시장이 설비과잉 조짐이 보이는 것은 전세계 자동차 기업들이 집결하고 있는데다 지난해부터는 전혀 자동차와 관계가 없는 토종업체들마저 경쟁적으로 신규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도 마찬가지다. 칭화둥팡,모토로라,휴렛팩커드 등 국내외 IT업체들이 올해 중국 디지털TV시장에 뛰어들기로 하면서 가격인하 경쟁이 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가전업계는 그동안 수출로 과잉생산분을 해소해왔으나 미국 업계의 반덤핑제소와 수출 부가가치세 환급 축소 등으로 수출 여건이 악화돼 생산시설을 제대로 가동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중국 TV업체가 몰려있는 광둥성의 경우 실제 지난해 11월 미국 상무부가 중국산 컬러TV에 반덤핑 잠정판정을 내린 직후인 12월 한달간 출고대수가 21만대로 3개월전 45만대에 비해 크게 줄었다. 과잉공급으로 궈메이 등 유통업체들의 가격결정 파워가 커지는 것도 가격인하 요인이다. ◆고민에 빠진 한국 기업 작년까지만해도 베이징현대차 관계자들은 경쟁사의 잇단 가격인하에도 "가격인하는 없다"고 장담해왔다. 하지만 올들어 상황이 반전됐다. 베이징현대차 관계자는 "가격을 고수해 차별화한다는 전략을 유지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어졌다"며 "물량을 늘리는 식으로 채산성을 보전한다는 구상"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현대차는 이에따라 올해 쏘나타 엘란트라 등 2개 차종의 생산 목표를 당초 13만대에서 15만대로 늘리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자동차 마진은 평균 15%로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었지만 가격인하전이 확산되면서 거품이 급속히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