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고 부끄럽고 난감하기 짝이없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시작한 노무현 대통령은 끝내 야당이 요구하는 선거법위반과 관련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대신 4·15총선 결과를 재신임과 연계하겠다는 또다른 '폭탄선언'을 했다. 여당은 "국정안정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평가했지만 탄핵안을 발의한 야당은 "국민을 협박해 총선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경제계는 탄핵정국에 재신임 이슈까지 얹혀지면서 여야간의 갈등이 더욱 증폭되자 경제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이제 막 회복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는 우리 경제의 대외 신인도 하락과 경제주체들의 의욕상실 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여야간의 극한 대치 정국이 대화와 타협으로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어차피 많지 않았다. 국민들은 다만 탄핵정국으로 나라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파국만은 막아야겠다는 의미에서 대통령에게는 사과를,야당에는 탄핵안 철회를 요구했다. 그래야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살릴수 있는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그러나 상황은 거꾸로 전개되고 있다. 야당의 탄핵발의나 대통령의 사과거부, 그리고 총선-재신임 연계 등 모두 명분과 이유는 그럴 듯하다. 양측 다 자기들 주장이 국가의 장래와 정치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그러나 그런 주장과 논리의 속내가 이번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오죽하면 국내 정치의 국외자(局外者)인 외국인까지 나섰을까. 윌리엄 오벌린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면서까지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의 요인이자 근원지는 북핵문제가 아닌 정치권"이라고 일갈했다. "혼란이 계속되면 정책 조율과 이행이 어려워지고, 정치안정이라는 목표달성 의지에 의문을 갖게 되어 투자자들도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고도 말했다. 투자자금의 회수도 고려할수 있다는 경고이다. 세계 기업인들이 보는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어제 열린우리당의 국회농성 사진을 1면 상단에 대문짝만 하게 보도했다. 우리 정치인들은 외국 투자자들이 이 사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 것인지 한번이라도 고려해 봤는지 궁금하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막가파식 정쟁이 나라 경제를 돌이킬수 없는 혼란으로 몰고 갈까 걱정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