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일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 사실상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를 겨냥한 듯한 비판 발언을 해, 한.일 관계에 미묘한 파장이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5회 3.1절 기념식에 참석, "일본에 대해 한마디 꼭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국민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들을 흔히 지각없는 국민이나 인기에 급급한 한두 사람의 정치인이 하더라도, 적어도 국가적 지도자의 수준에서는 해선 안된다"고 언급했다. 이는 노 대통령의 지난해 6월 9일 방일 때 중의원(衆議院) 대상 연설과 지난해 3.1절 및 8.15 기념사 등 최근 일본 관련 연설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톤이 올라간 수준이다. 노 대통령은 일본 중의원(衆議院) 연설에서 "여러분과 각계 지도자들께 '용기있는 지도력'을 정중히 호소한다"고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으나 이에 앞서 행한 지난해 3.1절 및 8.15 기념사에선 일본에 대해 특별히 언급을 하지 않았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특정인을 지칭하지는 않고 '국가지도자'라고만 밝혔지만 최근 정황으로 볼 때 사실상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달 27일 오사카(大阪) 지방법원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이 기각되자 다음날인 28일 "내가 왜 소송을 당했는 지 모르겠다. 매년 참배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29일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고이즈미 총리의 이런 언급에 대해 노 대통령의 입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 "침묵 속에 오히려 더 깊은 뜻이 담긴 것 아니냐"고 밝혔었다. 한.일은 지난해 6월 노 대통령의 방일 때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21세기 미래지향적 관계를 정립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일본은 그 이후 유사법제 의회 통과, 독도우표 발행에 대한 항의와 독도 영유권 주장,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으로 한국의 감정을 자극하는 행위를 계속해왔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001년 취임 이후 태평양전쟁 핵심 전범들의 위패가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계속 참배해왔으며 특히 올해에는 새해 벽두인 1월1일부터 전격 참배,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지난달 10일에는 "독도는 우리(일본) 땅"이라고 말해 한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따라서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약속해놓고도 부적절한 언행을 계속하는 데 대한 일종의 경고 성격이 짙다는 관측이다. 외교통상부측은 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비판의 대상을 적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일 외교관계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반론'이라는 점에서 일본 정부가 이의를 제기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정황상 노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를 겨냥했다는 분석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만큼 일본이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한.일 외교에 미칠 파장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 어떤 형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있어 한.일 외교관계에도 미묘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은 오는 7일 일본 도쿄(東京)를 방문, 이날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상과 회담하고 8일에는 고이즈미 총리도 예방할 예정이어서 이 때 일본측의 공식적 반응이 나올 것이란 예상이다. (서울=연합뉴스) 추승호 인교준기자 chu@yna.co.kr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