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22일 임시전당대회후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혀 8개월만에 `낙마'하게 됐다. 지난해 6월26일 두 차례 대선 패배라는 절망속에서 `인큐베이터론'을 내세워 정권 재창출의 밀알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왔던 최 대표는 결국 자신의 소망을 제대로펼쳐보이지도 못한 채 밀려나야 할 신세가 됐다. 지난 8개월은 정치인 최병렬에게 영광은 짧고 시련은 길었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작년 10월부터 터져나온 불법대선자금사건이라는 `이회창 시대'의 `역사적 잔재'는 그의 정치력을 옭아매는 족쇄가 됐다. 특히 `차떼기 정당'이라는 지울 수 없는 유산은 그의 정치적 운신의 폭을 크게 옥죄였다. 세차례 대국민 사과를 하고 불법정치자금을 차단하기 위한 정치개혁안 마련을선도했지만 불법대선자금의 과거 굴레를 벗어던질 수는 없었다. `최틀러'라는 별명을 무색하게 한 지도력 부재도 몰락의 한 요인이 됐다. 지난9일 서청원(徐淸源)의원 석방요구결의안 국회가결 방치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처리 무산시 보여준 지도력의 한계는 제1당 지도자로서의 그의 정치적 위상에 치명타가 됐다. 이에 앞서 이뤄진 비리혐의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전원 부결도 여론의 비난을 자초했다. `네탓 정치스타일'도 반최(反崔)진영의 단골 공격메뉴였다. 최 대표는 불법대선자금 사건이 불거진 뒤에도 책임지고 규명에 나서기 보다는 "우리는 알아내려고 해도 알 수가 없다"는 변명 일색이었다. 특히 지난 17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당의 총체적 위기상황에 대한 원인을불법대선자금으로 돌리며 이회창 전 총재의 책임론을 제기, 당내외 이회창 지지세력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했다. 자기 희생 결여도 흠이 됐다. 최 대표는 대표 선출뒤 취임 일성으로 보수세력의반성과 참회를 일갈했으나 보수세력의 반성과 개혁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했다. 또 대대적 물갈이를 통한 공천혁명을 언급하며 당내 고령 중진들에 대해선 희생을 압박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한 불출마 요구는 외면함으로써 `자기 희생적 결단'을 요구받는 위기상황을 초래했다. 평생 비주류 정치인의 길을 걸어오면서 사람냄새 나는 `포용의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 점도 결정적 장애물이 됐다. 당대표임에도 불구, 그는 항상 소수였다. 더욱이 최 대표 체제 출범의 1등 공신이었고 한때 전면에 배치됐던 이재오(李在五) 전 사무총장, 남경필(南景弼) 원희룡(元喜龍) 오세훈(吳世勳) 의원 등 소장파로부터 집중적인 퇴진압박을 받은 점은 그에겐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 대표는 늦게나마 대표사퇴를 선언, 당위기 수습을 위해 자신을 던졌다. 이제 한나라당의 흔들림없는 개혁공천과 재창당을 통한 국민신뢰회복이라는 그에게 맡겨진 마지막 책무를 사심없이 해낼 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수 기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