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남편과 자녀, 부모형제 등 가족들과 함께 사선을 넘어 북한을 탈출해 입국한 이모씨는 요즘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을준비중이다. 이씨는 남편이 몇년째 아무 일도 않고 놀고 있었으나 자식들을 생각해 참아오다최근 남편이 자신이 하루벌이로 벌어 수백만원을 저축한 통장을 몰래 갖고 나가 모두 써버리자 생각을 바꿨다. "저는 식당일을 하든, 환경미화원을 하든 뭐든지 일을 해서 생활비를 마련하려는데 남편은 육체노동이 싫다며 몇년째 놀고 있습니다. 가장이면 가족을 먹여살리든가, 아니면 집안일이라도 잘해주던가. 집안일도 전부 제 몫입니다. 더는 이렇게 살수 없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 여성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사고에 젖어 사회 적응을 못하고 있는 북한 출신 남편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으며 별거, 이혼에 이르는 사례도 갈 수록 늘고 있다. 상당수 미혼 탈북 남녀들의 경우 입국 후 서로의 정착 지원금을 합쳐 함께 잘살자는 뜻으로 하나원을 퇴소하자마자 결혼했다가 얼마 안있어 갈라서는 경우가 허다하며 이같은 현상은 이미 북한에서 결혼한 부부이거나 중국 등 제3국에서 동거를 하다 입국한 커플들도 예외는 아니다. 부부 갈등의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과 아내에게 폭언과 폭력을서슴지 않는 잘못된 가부장적인 행태. 김성민 백두한라회장은 "주변 탈북자 커플 가운데 별거나 이혼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면서 "갈등없이 잘사는 부부는 예외없이 남자가 경제력이 있거나 아내의인격을 존중해주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는 경우"라고 말했다. 박모씨는 3년전 중국에서 숨어지낼 때 만난 동료 탈북자 최모씨와 함께 입국한뒤 결혼해 아들까지 낳았으나 남성위주의 사고와 행태를 버리지 못한 최씨에게 질려 1년전 이혼했다. 북한에서는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함에도 가정생활에서는 남성 우위의 봉건적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어 북한 남편들은 마치 60년대남한의 남편들과 같은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박씨는 "많은 탈북 여성들은 남한에 정착한 뒤 북한과 달리 여성의 인격이 존중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면서 "물론 남한에도 매맞는 아내가 있고 일부 가부장적인 가정들도 있겠지만 북한과는 비교가 안된다"고 말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살아도 '세상 여자들이 다 그런가부다'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인격을 존중해주고 자상하게 집안 일도 잘 거들어주는 남한의 남자들을 보면서, '같은 여자인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지난해 말 남편과 이혼한 오모씨는 "탈북 여성들끼리 모이면 남한 남자들과 비교하면서 자기 남편들 흉을 많이 본다" 면서 "탈북 남성들은 북한에서 하던 습관 대로 여자를 무시하고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고 욕설과 폭력까지 하는데 어떻게 비교가안되겠습니까?" 3년전 한국에 온 뒤에도 계속되는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못해 이혼했다는 정모씨는 "북한 여자치고 남편에게 매맞아 보지 않은 여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북한에서는 배운 사람이건 못배운 사람이건 여자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가하는 것은 아주 일상적입니다. 남한에 와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었습니다"고 말했다. 하나원에서 만난 남편과 1년전 결혼한 유모씨는 자신은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지만 집에서 노는 남편으로부터 걸핏하면 구타를 당한다고 털어놓았다. "힘들게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밥을 차려놓으면 '반찬이 맛이 없다'면서 그릇을뒤집고 구타를 합니다. 그뿐입니까. 밤낮 전화로 제가 어디서 뭘 하는지 체크하면서스트레스를 줍니다. 그래서 현재 이혼을 생각 중입니다. 제 주변 친구들중에 저와 같은 이유로 이혼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무시당하고 매맞고 살아도 탈출구가 없었으나 남한에 와서까지 와서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별거나 이혼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다수 탈북 여성들의 말이다. 지난 99년 자녀만을 데리고 입국한 탈북 여성 최모씨는 재혼 의사를 묻는 질문에 "북한에서 남편의 구타와 욕설에 지칠대로 지쳐 다시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며 "가부장적인 남자와 사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편이 훨씬 낫다"고 머리를 저었다. 흔히 탈북 남성들은 경제적 형편, 남한 여성들이 자기 주장이 강한 점 등을 고려해 비슷한 처지의 탈북 여성을 배우자로 선호하고 있으나, 정작 사회 적응을 잘하는 아내들은 남편의 '부담스런' 요구와 횡포를 수용치 않고 있는 것. 남한에 온 뒤 1년간 아내와 불화를 빚다 뒤늦게 '남한식'으로 아내를 위하며 화기애애하게 잘 살고 있다는 탈북자 김모씨. "저는 저 자신과 가정의 화목을 위해 남자의 허세를 포기했습니다. 아내의 인격을 존중해주고 집안 일도 함께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젠 탈북남성들도 변해야 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기자 chsy@yna.co.kr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