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몰들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 상가마다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임대료를 내려도 상인들은 떠나고 있다. 외환위기 때도 불야성을 이뤘던 동대문도 한산하기만 하다. 곳곳에 패션몰이 들어서 점포 과잉이 극에 달한데다 불황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패션몰들은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한편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앞다퉈 특화매장을 꾸리고 있다. 패션몰의 몰락=패션몰 수는 2002년을 기점으로 빠르게 줄고 있다. 2001년 말 1백98개였던 패션몰이 최근 2년새 60개나 사라졌다. 영업을 하고 있지만 빈 점포가 많아 상가로서 기능을 못하는 곳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장사가 안돼 패션몰을 떠나는 상인도 줄을 잇고 있다. 동대문 일대 부동산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최근 반년새 점포 매물이 20∼30% 늘었다. 임대료는 반년새 20% 떨어졌다. 밀리오레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봄 2백50만원이던 밀리오레 1층 점포 월세가 2백만원으로 떨어졌다"며 "그런데도 세들겠다는 상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관리비나 홍보비조차 제때 내지 못하는 상인도 늘고 있다. 동대문 한 도매 패션몰 관계자는 "한 층에 5,6집 정도는 관리비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인들은 보증금이 소진될 무렵이 되면 상가를 떠난다"고 얘기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상인들간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동대문 한 패션몰의 등기분양 임차인은 "공실률을 감추려고 상가측이 등기분양자의 동의도 없이 헐값에 세입자를 들이고 있다"며 "등기분양자가 받아야할 임대료를 상가측이 착복한다"고 주장했다. 또 "점포가 비어 있는데도 등기분양자에게 관리비나 홍보비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패션몰 신축 붐 사라졌다=전문가들은 수년째 이어져온 패션몰 신축 붐이 올 가을부터 진정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잘 나가던 패션몰에서도 상인들이 빠져나가는 판에 무슨 재주로 입주상인을 모집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최근 점포를 분양하고 있는 대다수 패션몰에서 분양률이 50%를 밑돌고 있다"며 "알짜 상권이 아니고선 패션몰을 새로 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굿모닝시티 사기분양 사건으로 패션몰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것도 신규사업을 펼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만난 한 패션몰 투자자는 "서울 도심 신축 패션몰을 분양받으려고 적극 검토했는데 굿모닝시티 사건 후 마음을 돌렸다"며 "패션몰 개발업자들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패션몰 구조조정 확산=패션몰들은 매출이 떨어지는 매장을 과감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동대문에 패션몰이란 업태를 처음 소개했던 밀리오레는 최근 대구점과 광주점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밀리오레 전 점포의 3분의2를 등기분양으로 전환해 자금의 유동성을 늘리기로 했다. 밀리오레 관계자는 "앞으로 3년 이상 패션몰의 몰락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 시기에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상가를 매각하기가 여의치 않자 일부 층을 일괄 임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부산 태화백화점 자리에 4개월 전 문을 연 패션몰 쥬디스태화는 지난달 초 가구 브랜드 한샘에 1천3백평에 달하는 7층 매장을 일괄 임대했다. 쥬디스태화의 김보경 홍보팀장은 "매장을 고급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한 층을 일괄 임대했다"며 "패션상가로 임대하는 경우에 비하면 수입은 다소 줄지만 안전하다"고 말했다. 패션몰들은 강도 높은 매장 리뉴얼도 추진하고 있다. 패션상품 매장의 일부를 명품 아울렛,전자제품 매장,가구 매장 등으로 바꾸고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