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관계의 현주소는 두 척의 배가 상징한다. 하나는 화물여객선 만경봉호요,다른 하나는 공작선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평양 정상회담 1주년인 지난 17일 일본의 한 유력신문 사설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매년 20여회씩 니가타항을 드나들던 만경봉호가 올해는 고작 4회 입항에 그친 것과 도쿄 오다이바 일대에 전시된 북한 공작선에 견학인파가 구름처럼 몰리는 것만큼 오늘의 북·일 관계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것은 더 없다는 지적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사설의 지적은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사람과 물자의 교류는 물론 대화마저 거의 끊긴 채 일본 땅에는 북한에 대한 경계심과 분노만 가득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국방위원장이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 5명이 돌아온 후 일본의 반북한 감정은 악화일로를 달렸다. 조총련 학교 학생들의 치마가 벗겨져 나가고 조총련계 금융기관 건물이 폭발물과 총탄 세례의 대상이 됐다. 평양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외무성 간부 집에 폭발물이 설치됐던 것에 대해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당연한 일'이라는 폭언으로 물의를 빚고도 "내 말이 어디가 틀렸느냐"는 식으로 고개를 바짝 들고 있다. 막후교섭 성공으로 스타 대접을 받았던 간부는 매국노로 돌팔매를 맞고 있다. 일본인들의 반북한 감정을 증폭시키고 고립을 자초한 기본 책임이 북한에 있음은 더 말할나위 없다. 납치해 간 형제와 자식을 돌려보내고 진상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원성이 빗발쳤어도 북한은 핵 개발로 일본의 악감정을 부채질했을 뿐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북한 때리기에 몰두한 나머지 경제협력(돈)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제대로 의식하지 않고 있다. 납치와 핵 문제 해결에 이 카드를 유용하게 써 먹어야 한다는 아사히신문의 주장조차 낮은 목소리에 그치고 있다. "평양회담은 일본의 자주외교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국교정상화 교섭 중단은 실패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의 진단은 반북한 감정에 가로막힌 일본 외교의 딜레마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