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는 2일 시중 단기 부동자금이 작년말 현재 688조원 규모로 급증한 것으로 추정하고 경기 침체가 장기간 지속되고 시중금리가 더 하락할 경우 자칫 일본식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 가능성을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유동성 함정이란 단기 부동자금이 급증해 통화정책의 효과가 소멸되는 현상을가리킨다. 연구소는 경기 급랭과 디플레이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정책 당국이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경우 이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우려가 있는 만큼 금리 결정 기능을 시장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이날 `단기 부동자금 급증의 실상과 해결 방안' 보고서를 통해 2002년말 현재 우리 나라의 단기 부동자금은 총 688조원 규모로, 외환 위기 이전인 1996년말의 330조원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2배 규모로 연구소는 수시 입출금이 용이한 만기 6개월 미만의 금융상품을 단기 부동자금으로 분류했다. 경제 주체별로는 가계가 전체의 51.5%%를 차지하는 354조4천억원을 보유하고 있고 기업도 123조4천억원의 단기 부동자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나머지는정부 및 금융기관 보유분이다. 특히 실물 경제 활동에 필요한 단기 자금을 제외한 가계와 기업의 과잉 보유분은 139조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93%(129조원)를 가계가 갖고 있고 기업은 8%(10조원)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외환 위기 극복 과정에서 사상 초유의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흑자로 해외 부문에서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된 데다 지난 2000년부터 금융권의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금리 하락에 따른 저축 유인의 감퇴로 단기 부동자금이 급격히 늘어났다고설명했다. 보고서는 또 경기 침체 심화에 따른 불확실성도 개인과 기업이 단기자금 보유규모를 늘리게 된 배경이라고 말하고 초저금리 및 건설 경기 활성화 등 정부 정책도불확실성을 증대시켰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단기 부동자금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증시와 부동산 시장에서 이상 과열 현상이 초래되고 있으며 돌발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단기 부동자금이 즉각 이동하면서 금융시장 전체로 불안이 확산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초저금리 하에서는 부동자금이 해외로 유출되거나 유동성 함정에빠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과도한 부동자금을 해소하기 위한 장.단기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중복 규제 통폐합, 법인세율 인하 등 대기업의 투자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는 한편 기업 대출 비중이 높은 금융기관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간접금융을 정상화하고 장기저축에 대한 세제 혜택 및 장기채 공급 확대 등의 정책을 집행할 것을 보고서는 제안했다. 보고서는 또 정부와 기업에 대해 디플레이션과 유동성 함정을 염두에 둔 최악의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사전 대비 태세를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연합뉴스) 권정상기자 jus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