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겐 뢰플러 <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 사장 > '시장에는 돈을 제외한 어떠한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분식회계 스캔들로 입증되는 듯하다. '에이전시이론'은 경영자가 회사·주주는 어찌 되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분식회계 사건들로 드러난 개인의 탐욕은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혹자는 기업에 대한 주식시장의 압박과 기업 성공신화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윤리와 자유시장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견해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이제 급진파들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일부 보수주의자들조차도 산업화와 근대화가 전통적인 가치와 윤리적 기준의 쇠퇴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개인들은 마치 금전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충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한 것처럼 보인다.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의 기적으로 공공복지를 최대화할 수 있다고 했지만,어떤 사람들은 시장체제의 이론적 중심이 자신의 수익과 복지를 최대화하려는 이기주의에 있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것은,18세기의 여러 철학자와 초기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윤리관을 향상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경쟁적인 환경에서 자기의 이익과 금전적인 목표를 끊임없이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와 열망을 제어하며 합리성을 우선시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자유시장경제 도입 2백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아직도 권력과 무모 그리고 불합리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시조들이 너무 낙관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장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영향력이 크지 않았고,인간의 악한 본성은 영원하거나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쁜 버릇은 고치기 힘들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시장은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번영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경제 발전은 많은 국가가 민주화되는 원동력이 됐다. 시장체제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즉 정부가 모든 것에 참견하거나 시민들에게 관료적인 의사결정을 권위적인 방법으로 주입하기보다,시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구조를 제공하는 데 전념하면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한다. 분명 시장은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시장에 불합리한 사례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백년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정부에 의해 발생한 치명적인 실패들이 시장에 의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때때로 시장의 실패를 초래하는 원인이 정부에 의해 시작된 경우도 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신용카드 사태도 위험관리에 소홀했던 카드사와 은행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카드사용에 대한 세액공제,신용불량자 사면 등이 아니었다면 문제가 현재처럼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 기업지배구조로 발생한 사건들에 대응하기 위해선,시장이 제 역할을 하도록 시장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물론 엄격한 법을 제정하거나 감시를 강화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시장과 윤리간의 관계를 다르게 보는 관점도 있다. 시장은 엄격한 윤리관을 가진 사회에서 제 기능을 더 잘,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의 정직성과 성실성 그리고 공평성을 신뢰하지 못한다면,시장거래는 과다한 비용을 초래하고 유연성을 상실하여 상호이익이 되는 거래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투자수익을 감소시킬 것이고,이에 따라 공공복지도 후퇴할 것이다. 시장참여자는 기업뿐만 아니라,관리자 소유자 고용인 노동조합 정부와 규제자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억제하지 않고는,사회나 개인의 윤리와 도덕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어느 누구도 비민주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방법을 보급시키기를 원하지 않는다. 덧붙이면 과거 공산주의국가들이 보여줬듯이,권위주의적 체제는 사회의 윤리와 도덕성을 강화하거나 보호하기보다 파괴하는 성향이 강했다. 결국 남아있는 희망은 시장이다. 도덕성과 윤리기준을 포함한 제도적 구조 덕에 어떤 사회가 더 성공적이라면,세계적으로 만연한 경쟁은 결국 다른 사회도 역시 그 같은 구조를 받아들이거나 더 나은 대체재를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