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산 형성과 소유의 순리 .. 卜鉅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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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대 사건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그런 사정엔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근본적인 것은 우리 체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이해와 애착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체제에 대한 이해와 애착이 없으니,작은 저항에도 말과 정책을 바꾸고,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타협을 하게 된다.
현 정권이 지금 깊이 새길 것은,우리 사회체제가 본질적으로 정의롭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와 그것을 떠받치는 이념인 경제적 자유주의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 정의롭다.
자본주의는 개인들이 대부분의 재산을 소유한 체제다.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 자신에게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소유한다.
자연히 재산의 소유관계를 밝히는 재산권은 사람들의 삶에 대해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작용한다.
원시적 공동체에선 재산이 공유되는 정도가 현대사회에서보다 크지만,재산권은 그런 원칙을 존중한다.
사냥을 했을 경우 짐승을 잡은 사람이 고기의 대부분을 차지한 뒤 나머지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즉 어떤 물건의 생산에 기여한 사람이 그것을 소유하고 분배하는 권리를 지닌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런 원칙을 따른다.
그런 행동양식은 실은 다른 종(種)들에서도 나오니,대부분의 짐승 새 그리고 물고기는 자신이 만든 둥지를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둥지만이 아니라 그 둘레 땅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둥지 둘레에선 둥지 임자가 다른 것들의 침입에 거세게 반응하고,침입자는 공격성이 줄어드는 영역성(territoriality)이 나타난다.
이런 행동양식에서 우리는 정의감의 원초적 형태를 본다.
따라서 재산권을 핵심적 제도로 삼은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정의롭다.
재산 형성에 대한 공헌을 재산에 대한 권리의 근거로 삼는 자본주의보다 더 정의로운 체제를 우리는 생각해내기 어렵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불평등을 결정적 결점으로 꼽으면서,구성원 사이의 평등을 보다 잘 이룬다는 점을 들어 대안적 체제를 내세운다.
그런 대안적 비자본주의 체제가 실제로 평등을 보다 잘 이루느냐 하는 물음은 차치하더라도,그런 주장은 이론적으로 근본적 약점을 지녔다.
평등은 상대적 덕목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어서,본원적 덕목이라고 볼 수 없다.
역사적으로 평등을 정의할 때 쓰여온 기준은 여럿이었고,그 기준들 사이의 우열을 판별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상대적 덕목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반면 정의는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덕목이다.
'내가 만든 소꿉은 내 것이다'라는 어린아이의 생각은 재산 형성에 대한 공헌 덕분에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다는 정의감에 바탕을 두었다.
아이들은 흔히 서로 소꿉을 빌려주거나 나누어 갖지만,그럴 때에도 소유에 대한 개념과 그것의 근거가 된 정의감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소꿉을 많이 가진 아이가 소꿉이 없는 아이에게 자신의 소꿉을 나누어줄 때,정의와 평등이라는 덕목들의 우선순위가 잘 드러난다.
정의의 본질을 평등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그래서 과학적 근거를 지니지 못했고,자연히 설득력이 약하다.
'공평으로서의 정의'를 내세우고,공평의 핵심을 평등이라고 본 존 롤즈의 주장은 이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그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 뒤에서 사회정책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리라고 주장했다.
모두 자신이 사회의 최하층에 속할 가능성을 고려할 터이므로,참가자들은 그런 계층의 복지를 늘리는 것을 사회정책의 핵심으로 삼으리라는 얘기다.
따라서 롤즈가 정의의 궁극적 바탕으로 내놓은 것은 '자기 이익을 잃을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것이 정의의 바탕으로서 어떻게 '재산의 형성에 대한 공헌'보다 논리적으로 우월하고 심리적으로 정의감에 더 어울릴 수 있겠는가.
노 대통령은 빼어난 정치감각으로 현실에 빠르게 적응했다.
이제 우리 체제에 대한 이해와 애착이 그런 정치감각에 확고한 방향감각을 더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eunjo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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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