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戰火)로 피폐해진 이라크 경제는 미국-영국 연합군의 사담 후세인 제거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특히 이라크 전역의 유전이 사실상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짐으로써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이 지원하는 쿠르드족 민병대가 지난 10일 키르쿠크 주변의 북부 유전지대를 장악했고 남부 유전지대는 이라크전 개전초기에 이미 연합군이 점령했다. 밝혀진 매장량만 1천120억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인 이라크의 유전을 이제 연합군이 완전 장악하게 된 셈이다. 이라크 남부 유전지대의 원유수출은 3개월안에 재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카타르에 설치된 미군 중부사령부는 10일 연합군 기술진이 이라크 남부 유전지대의 유정 1천개중 800개 가량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사령부측은 이 기술진으로부터 분출구에서 원유를 끌어올리는 양유(揚油)시설과 송유관,가스-석유 분리공장 등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일부 누출 사례가 발견됐을 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키르쿠크 주변의 유전에서도 지난 10일 늦게까지 송유관을 통해 터키 세이한의 터미널에 원유를 보낸 점으로 미뤄 시설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이한의 저장탱크에는 지금 사용가능한 이라크산 원유 830만배럴이 보관돼 있는 데 이라크 국영석유판매회사 `소모'와의 연락두절로 수출이 불가능한 상태다. 법적으로 `소모'를 대신해 수출을 허가해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퇴역장성 제이 가너에게 이라크 임시 군정을 맡기기로 했다지만 유엔의 전후 역할을 둘러싼 미-유럽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마당에 군정이 이라크산 석유관련계약 체결권을 행사할지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이 바스라항 주변의 이라크 남부유전에서 나오는 원유를 시리아의 정유공장에 공급해온 송유관을 폐쇄했다는 것은 주목되는 점이다. 1990년 이후 지속돼온 유엔의 대(對)이라크 제재를 무시한 채 지난 2000년 11월 시작된 두 나라 원유거래가 봉쇄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리아는 이 송유관을 통해 값싼 이라크산 원유를 하루 20만배럴씩 공급받으면서 자체 원유수출량은 하루 40만배럴로 배증시켰었다. 시리아의 국영석유판매회사 `시트롤'은 지난 8일 수출물량을 금년말까지 종전의 절반으로 줄인다고 고객들에게 통보했다. 한편 1948년 이스라엘 창건 이후 폐쇄된 이라크-하이파 송유관 재가동을 위해 이스라엘과 요르단 관리들이 회의를 가질 것이라는 이스라엘 언론 보도를 요르단측은 부인했다. 모하메드 바타이네흐 요르단 에너지 장관은 지난 9일자 요르단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문제의 "송유관은 더 이상 요르단 영토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망명 이라크 석유전문가들과 미국 관리들은 지난주 런던에서 만나 20년새 세 차례의 전쟁과 12년간의 유엔 제재로 붕괴된 이라크 석유산업을 복구, 발전시키려면 국제석유회사(IOC)들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라크로서는 기술 및 재원조달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지적이었다. 이라크 전문가들은 `생산공유협정'을 통한 IOC의 참여가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협정을 체결한 IOC들은 계약기간에 해당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일부를 생산참여의 대가로 가져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는 이미 사담 후세인 정권이 1990년대에 외국회사들에게 한때 적용했던 거래방식으로, 유엔의 제재 해제에 필요한 해당국 정부의 지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동원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계약은 유엔의 제재 때문에 이제 이행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또 미국회사들도 자국의 전쟁 기여도에 상응하는 역할을 확보하려 들 것으로 예상된다. (카이로 AF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