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껌 .. 이향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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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껌 같은 존재로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입안이 텁텁할 때마다 무척이나 그리운 존재,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없으면 허전한,아이들에게는 극진한 사랑을 받아서 그냥 꿀꺽 삼켜져 버리고 마는 껌,행여 아이의 뱃속이 상할까,스스로 변에 섞여 나오는 존재.슈퍼마켓에서는 언제나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놓여있는 껌,식당마다 필수품으로 놓여있는 존재.
서기 300년께 멕시코의 마야족이 나무의 수액을 채취해 끓여서 씹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껌은 아메리카 인디언에게로,그리고 콜럼버스가 신세계를 발견하면서 전파되었다고 한다.
19세기께 한 미국인에 의해 추잉검으로 완성된 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심심한 입을 녹이고 있을 것이다.
가끔 거리를 걷다가 문득 작심하고 애써 땅에 떨어진 껌을 볼 때가 있다.
그 순간 수없이 바닥에 박혀있는 검은 존재들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것들은 마치 시골의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처럼 총총히 박혀 있다.
물론 누군가의 구둣발에 붙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귀찮은 존재로 변해버리지만 말이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
껌 같은 존재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혹시 잘못된 것인가. 옷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도 않고,단물만 뺏기고 바닥에 버려지는 존재,게다가 중요한 자리에서 껌을 씹고 있으면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일쑤다.
아무리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하지만 껌만큼 극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도 드물다.
누구나 눈에 띄고 싶어 하는 세상,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래도 나는 여전히 껌처럼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 단물만 제공하다가 길거리에 버려진다 해도 잠시 동안이라도 텁텁한 입안을 상쾌하게 해주었던 것에 뜻을 두면서,가장 작으나 가장 상쾌한 존재이고 싶다.
아스팔트에 버려지는 순간에는 별이 되어 빛나고 싶다.
그래도 한마디 당부하고 싶다.
껌을 버릴 때는 종이에 싸서 잘 버립시다.
작지만 없으면 허전한 이 존재들이 누군가의 구둣발에 붙어서 귀찮은 존재로 전락해서는 안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