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화력을 앞세운 미.영 연합군이 예상대로 20여일만에 이라크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수도 바그다드는 물론 전국 곳곳을 뒤흔들던 전투기의 굉음과 빗발치던 미사일과 포탄, 기관총 세례는 멎었지만 전장을 적셨던 피의 냄새는 쉽사리 가시지지 않고 있다. 아직 공십 집계는 없지만 이번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합군이 130여명, 이라크인이 최소 1천200명에서 최대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많은 수가 어린이와 노약자등 민간인들이다. 바드다드병원들은 부상자들로 만원이었지만 제대로 된 의료장비나 약품부족으로 마취제도 없이 절단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절규가 언론을 통해 전세계 안방으로 전달됐다. 연합군은 놀라우리만큼 향상된 정확도를 지닌 미사일과 폭탄등을 동원해 이른바'족집게'공습을 펼쳤다고 주장했지만 격전지의 민간시설들에 대한 오폭도 잇따르면서 사랑하는 가족은 물론 집과 일터등을 잃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21세기 처음으로 벌인 이번 전쟁은 이렇듯 처참한 참상을 안겨주었으며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이미 피폐해진 이라크인들의 삶의 의지마저 꺾어놓았다. 하지만 모진 공포와 절망감을 딛고 살아남은 자들에겐 아직도 넘어야 할 고비가 만만치 않다. 걸프전쟁때 쿠웨이트를 퇴각하면서 약750개의 유정에 불을 질렀던 것에 비해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군의 유정방화는 극히 적었지만 연합군 진격을 막기 위해 바그다드 곳곳에 참호를 파고 석유를 채워 불을 지르는 전술을 선택했다. 여기서 나오는 화염과 검은 구름은 시내를 며칠씩이나 뒤덮었다. 전문가들은 이연기속에 포함된 미세발암물질들이 암및 선천적 기형아, 호흡기질환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곳곳에 묻혀있을 불발탄도 이라크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다 연합군이 각종 암을 유발하는 열화우라늄탄을 이번 전쟁에서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이라크인의 보건및 환경에 비상이 걸렸다. 독일 ARD방송보도에 따르면 미.영국군은 이라크군의 탱크와 전차들을 파괴하기 위해 관통력이 뛰어난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했으며 이 폭탄이 터질때 발생하는 다량의 분진이 인체로 흡입될 경우수일내 급성 신장손상 증세를 일으킬 수 있으며 추후 분진이 토양과 수질도 크게 오염시키는 것으로 전해졌다. 걸프전때는 대규모 유정방화와 연합군의 열화우라늄탄 사용에 따른 오염으로 이라크 남부지역의 암.백혈병 발병률이 7-10배나 증가했고 선천성 기형아 출산율도 4-6배 증가했었다.이같은 후유증으로 앞으로 이라크인 50만명이 더 목숨을 잃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각종 질병에 시달릴 것으로 유엔은 내다보고 있다. 대규모 폭격을 동반한 전투가 계속되면서 수반된 급속한 생태계파괴도 골칫거리다. 이라크의 생태적으로 주요한 습지와 농경지, 초목지대는 엄청난 병력 및 장비이동과 전투, 폭격등으로 곳곳이 파괴됐다. 이라크의 습지대는 중동지역에서 새들의 주요 서식지여서 33곳이 중동의 주요 습지대로 등록돼 있다. 국제자연보호연맹이 94년 작성한 멸종위기 생물목록에는 이 지역에 사는 11종이 올라있을 정도다. 이와 함께 '천일야화'의 배경인 바그다드는 물론 북부의 모술과 티크리트, 남부의 바스라 같은 격전장의 문화유적들도 전화를 비켜가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합군이나 이라크측으로부터 아직 문화유적 피해 발표는 나온바 없다. 유네스코는 그러나 티크리트와 모술에 위치한 박물관들이 큰 화를 당했다고 밝혔으며 귀중한 유물들을 소장한 바그다드의 국립박물관이 들어선 알-주후르궁이 폭격으로 파괴되는 모습을 무참히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바그다드는 중세 아바스 왕조의 수도로 고궁과 성벽, 모스크등이 즐비하며 바그다드의 국립박물관 역시 고고학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힌다. 바그다드 남쪽 90㎞의 바빌론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공중정원이 있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지는 북부 모술주에 위치한 하트라성밖에 없지만 이라크는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문명 발상지답게 아직 발굴의 손길조차 닿지 못한 곳들을 비롯해 총 2만5천개의 유적지가 산재해있다. 이번 전쟁으로 그 유명한 '하트라의 인물상'도 파괴됐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또 대부분의 유물들은 햇빛에 말리거나 가마에서 구운 벽돌 건축물로 지반이 취약한 사막이나 도심의 이라크 정부청사들 인근에 자리잡고 있어 큰 피해를 당했거나 아니면 곳곳에 포탄과 총탄 자국이 흉물스럽게 박혀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문화유적들은 전쟁의 포화보다 더 무서운 약탈과 도굴이란 '적'을 얼마나 비켜나갈 수 있을지가 더 의문이다. 실제로 걸프전때는 전쟁의 혼란을 틈타 니네베와 님루드, 호르사바드등지의 박물관들과 문화유적들이 대거 약탈을 당해 수만점이 조각조각나 국외로 밀반출됐다. 당시 이라크측은 4권 분량의 약탈된 문화유물 도록을 만들어 유네스코와 각국의 유명 미술관들과 경매소,국제경찰(인터폴)등에 배포해 회수작업에 나섰지만 상당수의 이라크 유물이 유럽과 북미의 암시장에서 거래됐었다. 이번 전쟁에서도 바그다드가 함락된 9일부터 곳곳에서 약탈과 방화가 난무해 문화재 피해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류창석기자 y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