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전후로 인선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13일 전격적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지금까지 이 위원장은 청와대를 비롯해 각계에서 사퇴압력을 받았으나 "때가 되면 스스로 알아서 처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자리를 지켜 주위의 비난도 거셌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SK글로벌 처리방향이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로 결정되고 금융시장 안정대책이 나온 이날 "이제 때가 된 것으로 생각한다"며 훌훌 자리를 떴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그가 수많은 사퇴압력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켰던것은 노욕(老慾)이 아닌 금감위원장으로서의 해야 할 일 때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금감위 관계자는 "위원장께서 새정부 출범과 동시에 사표를 내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실제로 그러려고 했으나 SK글로벌 분식회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관련 대책을 어느 정도 매듭을 짓기 위해 시간을 끌다보니 온갖 비난을 감수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위원장은 지난 11일 검찰수사 압력 논란으로 다시 한번 사퇴압력이 고조되자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관계기관과 협조하는 것이 금감위원장의 당연한 직무"라고 당당하게 맞섰다. 충남 보령 출신의 이 위원장은 지난 68년 행정고시(6회)에 합격해 안동세무서 총무과장을 시작으로 예산세무서장, 국세청 징세과장-조사국장, 재무부 세제국장, 국세심판소장 등 세정분야에만 몸담았다. 지난 94년 공직을 떠난후 한국투신사장, 96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98년 산업은행 총재 등 금융기관장을 맡았던 경험과 지독스러울 정도의 부지런함으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00년 9월 취임직후 2차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대우그룹 등 1차구조조정에서 처리되지 못한 대기업의 부실을 조기에 정리해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한편 시장원리에 의한 상시 구조조정시스템을 갖추는 업적을 남겼다. 또 지방은행을 우리금융지주로 묶는 등 2차 금융구조조정도 마무리했으며 위기에서 벗어난 뒤에는 기업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분기재무제표 검토제도와 공정공시, 회계제도 개혁 등을 추진해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회계처리 적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화.LG산전.SK케미칼.동부화재 등 대기업들을 일시에 분식회계로 강경조치했으며 사상 처음으로 삼성.LG카드 등 재벌계 금융사에 영업정지라는 초강수를 둬 시장 투명성 제고와 금융이용자보호를 위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거시경제에 대한 견해도 탁월해 한때 경제부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대북송금설이 불거지면서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북송자금을 대출해줬을 당시 총재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불법대출과 대출외압, 현대상선 늑장 감리 등 갖가지 부정적인 여론에 휘말려 정식 장관을 한번도 못해보고 35년만에 공직을 떠나게 됐다. 그러나 그는 금감위원장으로서의 마지막 직무를 다하고 홀연히 사의를 밝혀 명예로운 용퇴로 주위에서 기억하게 됐다. 그는 대학교 2-3곳에서 교수직 제의도 받았으나 당분간 특별한 계획없이 쉬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며 내년 총선 출마설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기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