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 이기형 <인터파크 사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ceo@interpark.com
90년대 초반 정보화 사회의 기치를 걸고,우리는 황홀하고 변화무쌍한 일들을 기대하며 큰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 때 우리는 어떤 꿈을 꾸었던가.
PC 성능은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졌고,PC가 인터넷에 연결되면서 네트워크가 거대한 컴퓨터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80년대 갇혀 있던 정보는 바닷물처럼 내 컴퓨터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인류의 지식은 광속으로 교류하면서 발전의 터전을 마련했다.
전자상거래는 인터넷 기반 위에 비용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 믿었다.
기관과 기업들이 정보화에 가세하면서 웬만한 일은 컴퓨터만 있으면 집에서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원격진료와 원격교육도 우리 꿈의 단골메뉴였다.
서로 얼굴을 안 보고도 업무를 처리하고 교육받고 치료받고 필요한 물건도 살 수 있으니 교통문제와 그에 따르는 석유수입,환경오염 문제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또한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할 터이니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바로 그 길이 열린 터였다.
IT산업의 꿈과 신화는 이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큰 산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주변의 나무들만 보면 처음 꿈꿔왔던 정보화 사회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온라인쇼핑은 확실히 자리를 잡았으나 기업간 상거래(B2B)는 잘 안되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은 시장성장에 대한 과대한 기대감으로 공급과잉이 돼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원격교육과 원격의료 분야는 아직 시장도 잘 형성되지 않았다.
한편 성인물이 난립해 자녀들에 대한 걱정이 늘었고 게임 중독증이 심각한 폐해로 부상했다.
재택근무는 지금으로선 불가능해 보인다.
사람은 역시 만나서 업무를 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요즈음은 IT산업의 발전으로 교통문제와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황당한 얘기로 여길 것이다.
결국 환상에 불과했던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큰 산의 중턱에 오르고 있다.
아직 숨을 헐떡거리며 넘어야 할 고개들이 연이어 있다.
우리가 저 멀리서 쳐다 보았던 그 아름다운 숲이 아니다.
그러나 정상에서 조감을 하면 결국 우리가 기대했던 이상으로 멋있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지금 힘들다 하여 우리의 꿈을 잊어서는 안된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미래의 주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