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sh@hitel.net 한 친구가 있었다. 그의 직장은 세인들이 대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곳이었으나 성품이 참으로 부드럽고 인간미가 넘쳐 꼭 마음좋은 시골 아저씨 같았다. 너무 선량해 하나님이 시샘했던지 그만 위암으로 투병중 내게 큰 화두를 남겨놓고 하늘나라로 불려갔다. 평소 본인의 건강에는 무심한 편으로,운명에 맡기는 소위 건강운명론의 소신을 곧잘 피력하곤 했는데 근래 소화장애가 있어 부인의 손에 끌려 모 대학병원에서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었다. 그 결과 상당히 진행된 위암으로 완치의 시기가 지났다는 말에 이 친구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조용히 살다 가겠다고 예의 그 운명론을 내세우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의 운명도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데 그 본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설득해 어렵사리 결심하고 수술을 받게 했다. 대부분 암 진단을 받으면 "내가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며 다른 병원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그는 담담히 받아들였고 진단받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경과가 좋아 섭생에 주의하며 곧장 회복되는 듯 했으나 얼마가지 못하고 그만 온몸에 전이돼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내게 안락사시켜 달라고 했다. 나날이 꺼져가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기보다 품위를 지키고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지만 그도 나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먼 산만 쳐다볼 뿐 타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었다. 결국 어느 날 그가 실종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이리저리 찾아보던 중 야산에서 스스로 목을 맨 모습으로 발견됐다. 역지사지 내가 그였더라면 어찌했을까. 안락사에 쓰일 약을 미리 준비해 둬야겠다고 아내에게 딴에는 아부성 발언을 했더니 속절없는 아내는 "당신은 끝까지 괴롭히다 만정을 다 떼고 갈 사람이니 아무소리 말고 평소에 잘하라"고 한다. 안락사가 존엄사가 될 수 있게끔 평소 덕을 많이 쌓고 또 그리 살기를 결심하지만 과연 내게 그럴 용기가 있을지 스스로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