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일자) 개혁은 겁주어서 될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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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와 민주당이 경제정책협의회를 거쳐 재벌개혁 관련 입법 추진방침을 거듭 분명히 했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놀랄 까닭도 없다. 다만 발표된 시점의 상황 때문에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있다.
SK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전체 재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제도의 입법방침을 왜 또 되풀이했을까.
재벌개혁을 '점진적 자율적 장기적'으로 해나가겠다던 것이 수사(修辭)에 불과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을까.
SK그룹에 대한 검찰수사는 '새 정부와 무관하다''재벌 길들이기가 아니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재계 입장에서 보면 겁먹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라고 하겠다.
과연 이렇게 해도 경기가 살아나고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을지….
집단소송제, 금융사 계열분리 청구제 등 새 정부에서 추진하려는 재벌개혁 관련제도에 대해 우리는 여러차례 문제점이 없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이를 추진하는 시기와 방법 또한 적절치 못하다는 점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가 들고나온 제도들은 냉정히 따져보면 현실적인 영향보다는 관념적인 측면이 강하다.
재계의 반대론 또한 그런 면이 없다 하기 어렵다.
상속세 완전포괄과세제를 도입하더라도 상속세 증수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이라는 게 세제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인 반면 정치권과 재계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칙상속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나,새 제도가 도입되면 마치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둘 다 옳은 현실인식이 아니다.
가장 말썽 많은 집단소송제도 마찬가지다.
허위공시 주가조작 분식회계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은 지금도 열려 있다.
이 제도가 없어서 주가조작이나 분식회계가 나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보험·증권사의 사금고화를 막는 것 또한 현행제도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계열사 주식 의결권제한규정도 있고 감독기관이 정한 자산운용준칙도 있다.
새 제도를 '정의구현'이라는 명분으로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은 유권자에게 다가서기 위한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대상이 될 사람들의 공포감을 극대화,제도시행을 어렵게 만드는 행위일 수도 있다.
시간을 갖고 토론하고 설득한다면 큰 충격 없이 새 제도를 정착시킬 수도 있었을 것인데,그렇지못한 까닭이 누구 때문일까.
진정한 개혁은 설득을 통해 공감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