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한글과컴퓨터(한컴)가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위기를 맞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위세에 밀려 주력제품인 '아래아한글'의 설 땅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경영권 다툼까지 일어나 적전 분열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7일 한컴 이사회가 경영능력과 리더십 부족을 이유로 김근 대표를 전격 해임하면서 촉발됐다. 김 전 대표는 절차상의 하자 등을 내세워 해임결정이 무효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로 대표이사에 오른 류한웅 사장측도 한치 양보할 뜻이 없어 양측간 다툼은 법정으로까지 번질 태세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업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막대한 적자를 낸데 대해 마땅히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이 경영권 다툼이나 벌이고 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지난해 한컴의 매출액은 2백25억원으로 전년보다 31% 줄었고 적자도 1백33억원에 달했다. 거액의 적자는 사실 벤처붐이 일던 3∼4년전 무분별하게 투자했던 결과였다. 일각에서는 주인 없는 기업의 고질적인 병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컴은 지난 2001년 메디슨이 보유주식을 처분하면서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로 전락,현재 지분율이 1%를 넘는 주주가 단 한 명도 없다. 경영진을 견제할 마땅한 장치가 없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구 경영진과 노조가 각자의 이익만을 좇다가 빚어진 일"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한컴은 주주와 임직원만이 아니라 국민의 기업이기도 하다. 1998년 외환위기로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했을 때 '아래아한글'만은 살려야 한다며 국민들이 나선 일은 지금도 기억이 새롭다.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아래아한글'이 MS의 아성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국민적 성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당사자들은 한발짝씩 물러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컴이 무너지면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미래도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해야 회사를 살릴 수 있을 것인지 대승적 차원에서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박영태 산업부 IT팀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