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전 만석꾼네 세면대에는 이상야릇한 연고가 있었다. 찐득이고 달착지근한 이것으로 이를 닦으면 번쩍번쩍 윤이 났다. 미국에서 물건너왔다는 콜게이트 치약이었다. 이를 닦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었던 당시 이 미제 치약은 부(富)의 상징이었다. 국산 치약은 1954년에 처음 등장했다. '럭키치약'이 바로 그것. LG생활건강의 전신인 럭키가 내놓은 이 제품은 치약을 급속히 대중화시켰다. 럭키는 소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3년 만에 콜게이트를 누르고 치약시장을 석권했다. 럭키치약으로 시대를 풍미한 LG생활건강은 '국민치약 브랜드'를 잇달아 내놓으며 50년 가까이 '치약의 명가'로 군림했다. 90년대 대표 브랜드는 '페리오'였다. 그런데 98년 라이벌 애경산업이 '2080'이란 이름의 치약을 내놓고 LG의 아성에 강력히 도전했다. 2080은 귀에 쏙 들어오는 숫자이름과 '20개의 건강한 치아를 80세까지'라는 슬로건이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출시 1년 만에 치약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페리오와 선두를 다투기에 이르렀다. 한국경제신문이 CMS(www.cms.co.kr)와 공동으로 전국 2백개 슈퍼마켓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80은 지난 1월 치약시장 점유율을 16.0%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페리오의 점유율은 13.5%에 머물렀다. 최근 3개월간 2080이 줄곧 상승세였던 데 비하면 페리오의 형세는 '고전'이라고 할 만하다. 다른 시장조사기관 자료에서는 두 브랜드가 13%대에서 공방을 벌이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2080이 최근 몇개월간 선전하고 있는 추세는 이 자료에서도 확연하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치약시장 점유율에서 LG(46.5%)가 2위 애경(23.3%)을 2배 가까이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1위 브랜드가 추월당한 것은 뼈아픈 일이다. 애경은 이달 중 획기적인 리뉴얼 제품을 내놓고 대대적으로 건강 캠페인을 펼쳐 올해 평균 점유율을 '마(魔)의 선'이라는 16%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다시 선보일 제품은 욕실 인테리어 소품 역할을 겸할 수 있는 미적·인체공학적 패키지라고 한다. 페리오도 올해 안에 획기적으로 달라진다. 페리오 마케팅팀 관계자는 "'치약 하면 페리오'라고 할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최대한 살리되 진부한 이미지를 벗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죽염''클링스' 등 믿음직한 우군이 많은 것도 페리오의 강점이다. 애경이 2080 하나로 LG에 도전하기엔 벅차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애경은 지난해 후속 상품으로 '비타덴트'를 내놓았지만 점유율이 3%대에 머물고 있다. 국내 치약시장은 연간 1천6백억원대. LG 애경 태평양 CJ가 '빅4'로 꼽히고 10여개 업체가 후미그룹을 형성하며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소비심리 위축으로 마지막까지 짜서 쓰는 짠돌이 소비자가 늘고 있어 점유율 끌어올리기가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