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2주년(1.20)을 맞는 부시행정부는 지난 2년 동안 공화당의 전통적인 현실주의적 국제주의 노선을 답습하면서 북한에 대한 강경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그 결과 북미관계는 클린턴행정부 시절에 마련됐던 기본적인신뢰마저 상실한 채 2년 내내 반목과 갈등을 반복해 왔다. 통일연구원의 박영호 연구위원은 지난 2년간 부시행정부가 "미국인의 전형적인선과 악에 대한 생각에 기초해 북한을 부정적으로 인식해 왔다"면서 부시행정부의대북정책을 한마디로 '무시정책'의 전형으로 규정, 북한과 미국간의 갈등이 미국의대북 강경정책에 기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심지어 '공격적 무관심(hawkish neglect) 전략'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태도는 미국의 심장부가 공격당한 9.11 테러참사도한몫 했다. 부시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힘에 의한 외교'를 강화하는과정에서 불량국가로 지목한 북한을 더욱 압박했기 때문이다. 부시대통령이 2002년1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 역시 그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은 북한에 대한 불신과 회의에서 비롯됐다. 부시대통령은 2001년 3월 한미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모든 합의를 지키고 있다는 확신이없다"면서 클린턴행정부가 북한과 합의한 사안에 대한 검증과 재검토 필요성을 역설했다. 부시대통령의 대북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미 정상이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데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대북인식을 드러냄으로써향후 북미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부시대통령은 안보팀 구성을 통해서도 북한에 대한 강경노선과 대북정책 경시입장을 드러냈다. 딕 체니 부통령을 중심으로 안보관련 부서의 핵심인물을 대부분강경파들로 구성함으로써 부시행정부의 대북접근 방식이 클린턴행정부와는 다를 것임을 분명히 했으며 클린턴행정부하에서 윌리엄 페리-웬디 셔먼으로 이어진 국무부내의 대북정책조정관 직제를 폐지하는 등 대북정책라인을 축소하고 경험있는 북한전문가들을 그 라인에서 배제했다. 북한과의 대화 및 협상의 폭을 스스로 좁힘으로써대북정책의 비중을 축소한 것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부시행정부가 대화분위기를 조성하기 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코너로 몰아 가는 등 문제해결을 위한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문제"라며 그 원인을 부시행정부 내에 관록있고 유능한 북한전문가가 없는 데서 찾았다. 부시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원칙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임을 밝혀왔다. 부시행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클린턴행정부하에서 수립된 '개입과 확대 정책(engagement and enlargement policy)'에 기초해 북한을 미국적 가치가 통용되는 체제로 만들어가겠다는의도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접근방식에 있어서는 클린턴행정부의 포용정책과 크게 다르다. 조지타운대학의 빅터 차 교수가 '공세적 포용정책(hawk engagementpolicy)으로 규정한 데서 엿볼 수 있듯이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포용정책의 틀을차용하면서도 내용에서는 무시정책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출범 직후 5개월여 동안 정책 재검토를 마친 뒤 부시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대해 대화를 제의해 접근정책을 시도하지만 재래식무기를 의제에 포함시킴으로써 사실상 북한과의 대화의 길을막았었다. 대화제의를 하면서 상대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부시행정부의 이같은 대북정책 기조는 9.11 테러사건이 발생하면서 보다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며 기독교적 선과 악의 관념에 기초해 미국과 반테러세력을 '선'으로, 테러집단과 테러지원세력을 '악'으로 부르는 가운데급기야 2001년 1월 29일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이다. '악의 축' 발언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이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공격 목표로삼고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게 함으로써 강한 반발을 샀다. 더욱이 2002년 6월 초부시대통령이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으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국가에 대한 공격을정당화하는 선제공격전략 수립 가능성을 시사해 북한을 크게 자극했다. 최근 핵문제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미국이 핵선제공격을 통해 북한을압살하려 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선 핵포기 선언'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에 대해 선제공격을 정당화하고 있는 상황에서먼저 체제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논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북한을 겨냥해 취한 대북 강경태도가 현재 핵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핵문제가 불거진 직후인 지난해11월 북한을 방문한 뒤 "4월 방북했을 때도 들었고 이번에도 강한 언급이 있었는데북한은 미국의 공격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며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북한의 불안감을 전했다. 윌리엄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도 1999년 9월 미국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한 후가진 한 인터뷰에서 "북한이 미사일계획을 가동하는 까닭은 안보, 즉 제어(deterrence)이다. ... 우리는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저들은 (북한은) 우리를 저들의 위협으로 간주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가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으로 인한 안보불안 때문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부시행정부는 지난해 8월 이후 북한에 대해 기존의 포괄적 접근방식 대신 핵심사안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춘 이른바 '대담한 접근(bold approach)'방식을 검토하는 등 대북접근 자세에서의 변화를 시사해 왔다. 미국의 그러한 자세변화가 상황인식의 변화에 따른 것인지, 또 이것이 앞으로의 대북정책에 어떻게 적용될런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동안의 경색국면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작게나마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는 지난 2년 동안 강경정책으로 일관해온 대북정책이 오히려북미관계를 악화시키고 한반도 주변정세를 불안하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점을 직시하고 대북 강경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한국정부와 주변국가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연합) 곽승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