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약속대로 대량살상무기 보유 실태 보고서를 제출함에 따라 이제 공은 유엔으로 넘어갔다. 유엔은 이라크가 보여준 `선의'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찰단과 안보리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사담 후세인 정권의 절박한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라크의 운명을 결정짓는 최후의 선택권은 역시 미국이 쥐고 있다. 외교소식통과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의 결정이 미국의 `국내적인' 정치.경제적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평화를 위협하는 독재자를 몰아내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신념은 그 어느 때보다확고해 보이고 행동의 대의를 마련하기 위한 작업도 점점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결정 단계에서는 외연적인 명분보다 실질적인 이해득실이 중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바그다드의 외교소식통들은 후세인 체제 축출이 미국의 변함없는 의도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직 부시 대통령의 목표에는 불확실성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한 소식통은 "부시는 물론 후세인을 제거하려 들겠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오히려 중요한 것은 미국 내부의 문제가 될 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최종 행동을 좌우할 변수는 도처에 널려 있다. 우선 오는 2004년 부시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다. 전쟁은 재선에도움을 줄 수도 있고 부작용을 안길 수도 있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당분간 인기는 급상승하겠지만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들어선 이라크의 전후 정권이 나약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주둔 미군에 엄청난 위험을 노출시킨다면 유권자들은 부시 대통령의 선택에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이 홀로 부담하지는 않겠지만 막대한 전쟁비용과 만만찮은 전후 복구비용도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표를 깎아먹는 부담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국제유가와 미국 경제의 상관관계도 큰 변수다. 특히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지금처럼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전쟁 시나리오는 사우디가 원유를 증산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작용한다. 미국은 이라크의 풍부한 석유를 안정적인 `전략자원'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전쟁이 석유위기를부를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의 `백과사전식' 보고서가 전쟁으로 가는 부시 행정부의 행보를 늦출 수 있을 지 섣불리 예측하기는 힘들다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조지 부시 전 행정부 시절 국가정보위원회 의장을 지낸 프리츠 에머스의 말을 인용, 최종 결정은 부시 대통령이 앞으로 후세인이 취할 어떤 행동에 만족을 느낄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고 관측했다. 그렇다면 후세인으로선 중동의 패권을 추구해온 과거의 야욕을 완전히 내다버렸음을 증명해 보이는 등 최대한 보여줄 것은 보여주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에머스는 지적했다. 갑작스레 나온 쿠웨이트 침공 사과도 이런 맥락에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기회를 봐가며' 혼내주겠다는 식의 생각은 추호도 갖고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너무 빨리 움직이는 게 아니냐'는 동맹국들의 조언 역시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바그다드 AFP=연합뉴스)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