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가리라/마지막엔 돌아가리라/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활나물 장구채 범부채를 뜯던 소녀들은 말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개암쌀을 까며 소년들은 금방망이 놓고 간 도깨비 얘길 즐겼다/목사가 없는 교회당, 회당지기 전도사가 강도상을 치며 설교하던/촌 그 마을이 문득 그리워' 노천명(1912∼1957)의 '망향'에서 보듯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귀향은 꿈이다. 그러나 막상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애써 찾아가 봐도 그리던 옛고향이 아닌데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친구도, 반겨줄 노모도 없는 수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생활기반이 있는 도시를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서울사람 대다수가 말로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되뇌이면서도 정작 며칠만 지내보면 떠난 서울이 그리워 몸살을 앓다가 돌아온다. 정겨운 이들이 모두 서울에 있고, 전화 한 통이면 자장면과 피자가 배달되고, 슬리퍼를 신고 나가 생맥주도 마실 수 있는 서울 생활에 익숙해진 탓이다. 공기는 탁한데다 길은 막히고 주위는 시끄러워도 서울이 고향이 된 것이다. 서울시가 20세 이상 시민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74.7%가 '서울이 고향'이라고 응답했다는 소식이다. 월드컵 개최 등으로 자긍심과 소속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울이 고향이라곤 했어도 딱히 서울 어디가 내고향이라고 짚어낼 사람은 많지 않을 성싶다. 서울살이란게 한곳에서 평생 지낼 수 있는게 아니라 형편 직장 자녀교육 등을 감안해 수시로 옮겨다녀야 하는 것인 까닭이다. 그런데도 서울이 고향이라고 답한 사람이 8년전보다 30%나 늘었다는 것이다. 서울은 진화중인 도시다. 월드컵을 계기로 곳곳에 화장실과 장애인 유도블록이 늘어나는 등 많이 좋아졌지만 교통지옥과 매연, 울긋불긋한 간판과 소음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서울의 이미지로 꼽혔다는 '첨단정보와 국제비즈니스 도시'나 '열정과 축구의 도시'는 고향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고향은 편안하고 따뜻하고 떠났다가도 언젠간 꼭 돌아오고 싶은, 그런 곳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갈 길은 아직 멀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