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을 선고받고도 빚을 갚지 않은 채무자의 숨겨진 금융자산을 일괄조회할 수 있도록 한 민사집행법의 재산조회제도가 금융실명제법과 상충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의 방침대로 채무자의 재산조회를 특정 금융회사만이 아닌 모든 금융회사로 확대하려면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6일 대법원과 금융계에 따르면 내년부터 시행되는 민사집행법의 채무자 재산조회가 법률의 미비로 특정 금융회사에만 한정돼 다른 금융회사 등에 숨긴 채무자의 재산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국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현행 금융실명제법상 법원이 직접 특정 금융회사를 지정해 채무자의 금융재산 조회를 요청할 수는 있다"며 "하지만 은행연합회가 법원의 요청을 받아 채무자의 모든 금융회사 재산 일괄조회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금융실명제법 4조(금융거래 비밀보장) 1항은 금융회사에 종사하는 자는 명의인의 서면동의 없이는 금융거래 자료를 타인에게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법원의 제출명령이나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한 거래정보 제공 등의 경우는 예외로 두고 있다. 은행.보험.투신.증권 등 금융관련단체들은 "금융실명제법상 금융정보를 제공할 '금융회사'에 금융단체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새로 만들어진 민사집행법에 모든 금융회사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포괄근거 조항이 있다"며 "민사집행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른 기관들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법원은 "채무자가 특정 거래은행이 아닌 다른 은행에 재산을 숨겨 두면 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금융회사로 조회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내년부터 시행될 민사집행법 74조(재산조회)는 재산명시절차가 끝난 뒤 채무자가 낸 재산목록만으로 채권자가 만족을 못하면 법원은 채권자의 신청에 따라 개인의 재산.신용을 관리하는 금융회사 공공기관 등에 채무자 명의의 재산에 대해 조회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법 9조에는 금융실명제법과 다른 법률이 상충할 경우 금융실명제법이 우선한다고 규정한 점을 들어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금융계는 지적하고 있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