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점유하고 있는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거센 통상압력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이 인피니온사의 제소를 받아들여 하이닉스에 대해 정부보조금 지급 문제를 조사하겠다고 나선데 이어 미국도 마이크론테크놀로지사의 요청으로 한국산 D램 상계관세 조사를 개시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05930]와 하이닉스반도체[00660]는 `일단 두고 보겠다'는다소 의연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 사내 법무팀을 가동해 대응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거세지는 통상압력 = EU는 지난 7월 `한국 정부가 하이닉스반도체와 삼성전자에게 각종 보조금을 지급해 피해를 봤다'며 독일 반도체업체인 인피니온이 제기한상계관세 제소를 받아들여 한국 D램 업계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EU는 자료조사를 마치고 내달 2일 D램 상계관세 실사단을 국내에 파견, 정부 및D램업체와 금융기관 등을 대상으로 보조금 지급 여부에 대한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미국도 22일 마이크론의 제소를 받아들여 한국 정부가 D램산업에 대해 보조금을지급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상계관세 조사에 본격 착수키로 했다. 만일 유럽연합과 미국이 상계관세를 인정하고 `관세예치명령'을 국내 업체에 내릴 경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작게는 수백만달러에서 수억달러까지 비용부담이 발생, 수출에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실제 우리의 지난해 미국과 EU에 대한 D램 수출액은 각각 15억6천만달러와 9억3천만달러였지만 호황기였던 2000년에는 D램 전체 수출이 104억달러였고 이 가운데대미 수출이 41억달러, EU에 대한 수출이 22억달러나 됐다. 다만 이번 조사대상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미국 현지공장 생산제품이 제외됐고 조세감면제도 중에서도 당초 마이크론이 보조금 내역으로 제시한 연구개발투자세액공제, 구조조정특별세액공제가 제외된 것은 다행으로 평가된다. ◆D램 업계 생존게임 = 전문가들은 EU와 미국의 이같은 통상압력이 최근 세계적인 정보기술(IT)산업의 불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크론과 인피니온은 불황속에서도 연간 수조원의 이익을 창출하는 삼성전자는 차치하고라도 세계 메모리반도체 3위업체인 하이닉스를 어떻게든 견제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과 EU업체의 한국 반도체업계에 대한 견제는 지난 2000년말부터 시작된D램 업계의 장기침체로 인수합병(M&A)이나 전략적 제휴를 모색중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생존게임'의 하나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이런 양상은 지난해 사상 최악의 불황을 딛고 올 들어 잠시 상승무드를 타는 듯하던 D램 경기가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과 대만업계를 중심으로 합종연횡이 가속화되고 있는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업체 반응 =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최종 판정까지 6개월 가량의 시간이남아있는데다 `한국정부가 반도체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인피니온과 마이크론의 제소사유가 쉽게 입증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일단 두고보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과 EU의 방침은 삼성전자보다는 하이닉스를 겨냥한 측면이 있고 마이크론이 올초 하이닉스에 대한 인수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내부자료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하이닉스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가 "요청한 자료를 제출하고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힌 반면 하이닉스는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았고 마이크론사에도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면서 구체적인 반박자료를 낸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라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이닉스는 "채무 재조정은 채권단이 시장원리에 입각한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진행된 것이므로 정부의 부당한 지원이 있었다는 마이크론과 인피니온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면서 "오히려 마이크론이 이탈리아 및 싱가포르에 있는 자사의 시설 확장을 위해 두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미국의 상계관세 조사개시 방침이 정해진뒤 법무팀을 동원,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대응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향후 전망 = 당장은 우리 업계의 수출에 영향이 없지만 미국이 마이크론의 제소내용을 받아들여 상계관세 부과를 결정할 경우 한국산 D램은 미국과 EU에서 가격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측은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오는 12월16일께 산업피해 유무에 대한 예비판정을, 상무부가 내년 1월25일께 보조금지급 여부에 대한 예비판정을 각각 내릴 예정이다. 상무부와 ITC의 최종판정은 각각 내년 4월10일과 5월25일께 이뤄진다. EU의 경우 인피니온의 제소가 지난 6월에 미국의 마이크론보다 빨리 이뤄졌지만예비판정은 내년 4월, 최종판정은 8월로 미국보다 늦게 진행된다. 이때문에 미국측이 상계관세 부과결정을 내릴 경우 EU의 판단에 악영향을 미칠것이라는 게 정부와 업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최대 쟁점은 산업피해 및 보조금지급 유무를 입증하는 것이다. 미국측은 한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한 사실이 있는지를 입증해야 하고 보조금을 지급했다면 이 때문에 미국 D램산업이 피해를 봤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만큼 이를부정하는 우리 정부 및 업계와 팽팽한 싸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정준영기자 yks@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