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3층 336호. 국회 재정경제위원회가 열린 이곳에는 재정경제부와 국세청 관세청 등 5개 외청에서 온 공무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복도는 아예 각 부처를 옮겨다 놓은 분위기였다. 컴퓨터뿐 아니라 프린터까지 복도 전원 코드에 연결해 놓고 열심히 질의 답변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비경제부처 예산안을 심의하는 예산결산위원회가 열린 2층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시각 과천 정부 종합청사 1동.장관과 차관이 모두 국회로 간 재경부는 마치 적막 속에 빠져 있는 듯한 고요함이 흘렀다. 본부 8개 국.실과 56개 과의 간부중 불과 4∼5명만이 사무실을 지켰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들어와 대기 중인 최광희 과장과 남북한 경제협력 문제로 국회에 신경쓸 틈이 없는 이성한 국제경제과장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머지는 의원 답변자료를 만들거나 결재를 해줄 '윗분'을 만나기 위해 자료를 싸들고 국회로 갔다. 모처럼 재경부를 찾은 방문객들은 "국회 일정 때문에 정신이 없다"며 "다음에 들러달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같은 사정은 예결위가 26개 경제 관련 부처 및 기관의 결산안을 심의하던 지난 21,22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등의 일부 직원들은 아예 여의도로 출근하기도 했다. 결재권자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다보니 일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한마디로 개점휴업 상태인 셈.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같은 국가 중대사도 차질을 빚을 정도다. 지난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FTA 협상팀이 칠레측과 '금융서비스 부문' 예외 인정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고 있을 때도 사령탑은 모두 국회에 있었다. 협상을 지휘해야 할 본부석이 텅 비었던 것. 때문에 현지 협상팀은 정부의 훈령을 하달받는데 3∼4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본부 직원이 현지에서 들은 상황을 국회에 나가 있는 간부에게 전하고, 이 간부는 다시 국회 답변 중인 장관에게 보고한 후 대책을 마련하는 식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다음주에도 결산안 심사가 있는데 결산안말고도 각종 현안에 대한 질의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장관 옆에 있지 않을 수 없다"며 "내달 8일로 예정돼 있는 회기가 끝날 때까지는 FTA같은 큰 일이 더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